[알파레이디 문화톡톡](3) 영화감독 류승완 ‘영화로 인생을 묻다’
이고은 기자 freetr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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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가장 힘든 때는 늘 ‘지금’… 감독은 예술가의 심장, 노동자의 손발 가져야”

류승완 감독(40)의 영화인생은 롤러코스터였다. 한국영화가 1000만 관객 작품을 내놓던 2000년, 그는 장편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각광받는 신예감독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그는 긴 암흑기를 보냈다. 올해 영화 <베를린>이 흥행에 성공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그는 하지만 “요즘이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경향신문 사옥에서 열린 연중기획 ‘알파레이디 문화톡톡’의 3월 강연자로 나선 그가 ‘영화로 인생을 묻다’를 주제로 풀어내는 이야기에 약 100명의 청중이 귀를 기울였다.

영화감독 류승완씨(왼쪽)가 지난 20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강당에서 열린 경향신문 연중기획 ‘알파레이디 문화톡톡’에서 약 100명의 청중에게 자신의 철학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영화감독 류승완씨(왼쪽)가 지난 20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강당에서 열린 경향신문 연중기획 ‘알파레이디 문화톡톡’에서 약 100명의 청중에게 자신의 철학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그는 “디지털 시대, 인터넷이 모든 문화를 압도하는 시대에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대해 피로감을 느낀다”며 말문을 열었다.

“예전에는 예술가들이 대중을 신경쓰지 않았는데, 지금은 대중이 예술가를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입구와 출구가 다르죠. 입장할 때는 ‘제발 영화 좀 봐주세요’라고 하다가 끝난 뒤에는 바로 다른 화려한 볼거리와 먹거리가 잔뜩 펼쳐집니다. 영화에 대한 자신만의 기억, 생각을 가로막는 곳이에요. 영화를 감상한 뒤 함께 본 이들과 토론을 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곱씹는 것도 중요한데, 요즘엔 2시간 넘게 본 영화를 트위터에 140자도 안되는 글로 쓰고 잊어버리죠.” 영화를 상품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말고 감독의 시각에서, 예술의 관점에서 한번쯤 곱씹어보기를 류 감독은 당부했다.



그의 영화인생은 한국영화의 명암과 함께해왔다. 그는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시기”였던 2000년에 데뷔했다. “아버지와 딸이 사랑하는 흉악스러운 얘기”(올드보이)나 “말도 안되는 얘기”(지구를 지켜라)처럼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생각만 하면 영화를 만들 수 있던 때”였다. 그는 <주먹이 운다>를 감독했고 <짝패>에는 무술감독 정두홍씨와 함께 배우로 출연했다. 시장이 커졌고 1000만 관객 영화가 나오기 시작했다. 흥행 기대 속에 봇물처럼 영화가 쏟아져 나왔다. 코스닥 상장을 위해 영화사와 연예기획사가 합병했고, 순수하지 못한 자본들이 영화계를 넘봤다. 질 낮은 영화들이 양산되고 관객들의 외면 속에 흥행 참패가 이어졌다. 영화계는 ‘빙하기’에 빠졌다.


혜성처럼 등장해 성공가도를 달렸던 류 감독에게는 시련의 시절이었다. 꽤 큰 시대극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투자는 되지 않았다. “과거에 성공했던 것에 손대서 위기를 넘겨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야심차게 <다찌마와 리> 극장판을 내놨다. 결과는 흥행 참패였다. “웃다가 죽자고 만들었는데 개봉하고선 펑펑 울었다”고 그는 웃으며 털어놨다. 청중 사이에서는 애석함 섞인 폭소가 터졌다.

그는 “중소기업 사장이 자살하는 이유를 알겠더라”고 말했다. 그가 손대는 영화마다 투자자들은 냉담했다. 남의 사무실에 얹혀 일하기도 하고, 회사 직원들의 퇴직금을 마련하기 위해 광고영상 감독도 했다. “장사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버티는 데까지 버텼다. 그것은 지금의 감독 류승완과 인간 류승완을 있게 한 힘이다.

“가장 힘든 때를 묻는다면 저는 늘 ‘지금’이라고 말합니다. 그 시절 저를 버티게 해준 것은 ‘모든 게 지나간다’는 사실이었어요. 좋았건 나빴건 다 지나가고, 지금은 현재 내가 살아있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쨌든 죽지는 않았잖아요. 그때는 죽을 것 같았지만, 지나면 지낼 만했던 것 같죠. 그런데 전 지금 여러분 앞에서 이렇게 땀흘리며 이야기하는 게 또 힘들 거든요. 그러니까 중요한 건 ‘지금’이고, 자신이 죽지 않을 만큼만 힘들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죠.”

100억원 규모의 투자가 이뤄진 <베를린>은 그에게 큰 도전이면서 부담스러운 작업이었다. 수많은 스태프들과 현장을 책임지는 감독으로서 그는 돈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많이 짊어지는 편이다. “영화감독은 예술가의 심장을 갖고 노동자의 손발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힘들 때 그는 자신의 작품 <주먹이 운다>를 떠올렸다. “영화를 만들면서 복서들에게 배운 사실이 ‘승리를 위해서는 펀치만큼 맷집도 중요하다’는 거였죠. 맞는 걸 무서워하는 사람은 한 대도 못 때려요. 대신 맞겠다고 생각하면 한 대는 때립니다. 힘들 때 저는 잘 안 참아요. 약간 과장해서 ‘힘들다’ ‘죽겠다’ 하면서 버티죠. 그러다 보면 버텨지더라고요.” <베를린> 촬영 당시에는 동료 감독들과 스마트폰 메신저로 얘기하며 위로받았다. 당시 모두 외국에서 영화 촬영 중이던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 감독과 서로 “내가 제일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관객의 질문에 그는 “고민만 하지 말고 일단 영화부터 만들어보라”고 했다. 부딪치고, 버티고, 견뎌내는 것이 자신을 영화감독으로 서 있게 한 원동력임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는 “별의별 일을 다 해봤지만 영화현장에 있으면 덜 피곤하고 보람이 있었다”고 회고한다. 다만 “자신에게 절실한 목표만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아무리 힘들어봤자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둘 중의 하나일 뿐이다.



■ 톡톡 입문법
극장 안 가고 컴퓨터·TV로 보는 영화
모조 미술품 감상 행위와 다르지 않아


영화를 보러 갈 때에는 “배신을 당할 각오를 하고 가라”고 류승완 감독은 충고한다. 어떤 감독의, 어떤 제작자의 영화라고 해서 선입견을 갖고 관람하는 것이야말로 영화에 실망하는 지름길이다. “자신이 아는 것만큼 본 것을 ‘모든 것’이라고 믿는 것도 위험한 태도”이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나쁜 것으로 생각하기보다 다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영화를 본 뒤엔 주변인과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을 류 감독은 권했다. 만족했든, 실망했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란 “어떻게든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는 또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만 온전히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컴퓨터와 TV 기술의 발달로 많은 이들이 영화를 손쉽게 소비하지만, 이는 모조 미술품을 감상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일침을 놓았다.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상영관의 큰 화면을 감안해 매 장면을 찍고 스피커 성능을 계산해 소리를 녹음한다. 그에 비하면 컴퓨터를 통해 재생되는 영화는 연출자의 연출 기법이 100% 구현되지 못하는 모조품이나 다름없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멀티플렉스는 영화의 다양성을 가로막는다고 류 감독은 비판했다. 같은 브랜드의 극장이더라도 극장마다 시설이 다르다. 류 감독은 “좋은 영화를 좋은 극장에서 소비하고자 하는 것은 관객의 권리”라고 말했다. 그는 “영화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좋은 영화를 추구하는 관객의 수요”라면서 관객의 ‘능동적인 영화보기’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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