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레이디 문화톡톡](4) 뮤지컬 프로듀서 설도윤의 ‘뮤지컬개론’
이고은 기자 freetr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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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흥분과 기대로 공연날 기다리는 관객이 좋은 공연을 만든다”

2000년대 이전만 해도 뮤지컬은 한국 대중들에게 낯선 장르였다. 하지만 2001년 <오페라의 유령> 공연 이후, 국내 뮤지컬 시장의 판도가 달라졌다. ‘전설’로 불리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대표작이 오리지널 제작사와 제휴를 맺고 한국에서 초연하게 된 사실은 물론, 100억원에 이르는 초대형 제작 규모도 화제였다. 한국 뮤지컬계의 역사를 새로 쓴 새로운 시도였다. 7개월간의 장기 공연, 24만명의 관객 동원…, <오페라의 유령> 한국 초연은 국내 뮤지컬계의 일대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일으킨 주인공이 바로 설도윤 뮤지컬 프로듀서(설앤컴퍼니 대표)다.

그는 국내에 뮤지컬 장르를 대중화하고 한국 뮤지컬의 완성도를 브로드웨이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큰 몫을 담당한 인물로 꼽힌다. 1996년에 이미 삼성영상사업단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해 <브로드웨이 42번가>를 제작, ‘문화산업’으로서의 가능성을 실험하기도 했다. 주로 해외유명작의 저작권과 제작시스템을 국내에 들여와 한국 배우와 스태프를 기용해 재창작하는 ‘라이선스 공연’으로 주목받았지만, <사랑은 비를 타고> 등 국내 창작 뮤지컬을 제작하면서 도전도 이어왔다.

설도윤 뮤지컬 프로듀서(왼쪽)가 지난달 24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강당에서 뮤지컬계의 현장과 숨은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 홍도은 기자  hongdo@kyunghyang.com

설도윤 뮤지컬 프로듀서(왼쪽)가 지난달 24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강당에서 뮤지컬계의 현장과 숨은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 홍도은 기자 hongdo@kyunghyang.com



경향신문 연중기획 ‘알파레이디 문화 톡톡’의 4번째 강연은 설 프로듀서가 맡았다.

마니아층은 물론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뮤지컬 장르에 대해 들여다보는 시간, 강연 제목은 ‘뮤지컬 개론’이었다.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사옥에서 열린 강연에는 뮤지컬 팬은 물론 뮤지컬 제작과 연출을 꿈꾸는 이들로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다.

“지금은 어떤 것도 뮤지컬로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왔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후 2010년엔 브로드웨이에서 인종차별 문제를 다룬 <멤피스>가 토니상을 수상했죠. 9·11 테러 이후엔 심각하거나 진지한 작품 대신 <맘마미아> 등 밝은 분위기의 작품이 주목을 끌었습니다. 이제 뮤지컬도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때가 되었어요. 그 가능성이 더욱 무궁무진해진 것이죠.”

설 프로듀서는 작품을 과감히 선정하고 저돌적으로 제작하는 스타일이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이 성공한 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캣츠>, <에비타> 등 대형 라이선스 공연을 잇달아 무대에 올렸다. 최근 브로드웨이에서도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품인 <위키드>를 성공리에 공연했고, 향후 <오페라의 유령> 속편 격인 <러브 네버 다이스>도 준비하고 있다.



성공가도만 달려온 것 같은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연극과 공연 예술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후, 집을 팔아 공연을 제작하다 빚더미에 앉았다. IMF 직후에는 뮤지컬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아카데미의 문을 닫고 파산해야 했다. <캣츠>를 공연하기 위해 부산에 세운 ‘텐트극장’은 빛도 한번 못 보고 50년 만의 태풍 ‘매미’에 휩쓸려 사라졌다.

“살다보면 굴곡을 겪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잘 될 때 자만하거나, 안 될 때 좌절하면 안 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경험을 통해 깨달았죠. 지금은 일이 잘 된다 싶으면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 생각하며 나 자신을 다잡곤 합니다. 일이 잘 안 풀리는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어요. 바로 자만하기 때문입니다.”

설도윤 프로듀서에게는 자신의 산 경험을 토대로 세운 원칙이 있다. 자신이 결정권을 가진 프로듀서라도 작품을 정하거나 의사결정을 할 때, 기획사 구성원들로부터 ‘만장일치’의 의견을 얻지 못하면 일을 진행하지 않는다. 그는 ‘소통’이 훌륭한 프로듀서를 만드는 힘이라고 믿는다.

뮤지컬을 만들고 싶어하는 이들에게는 “삶의 재미를 찾는 것에서부터 창의는 시작된다”고 조언했다. 많이 보고 경험하는 것이 상상력과 창의력의 밑바탕이 되고, 많은 경험은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뮤지컬을 세상에 선보인 그가 관객들에게 건넨 조언은 다름 아닌 ‘좋은 관객이 되어라’는 것이었다. 설 프로듀서는 “좋은 관객은 바로 ‘기다리는’ 관객”이라고 말한다.

“안 좋은 관객은 누가 ‘이것 괜찮다던데 보러가자’고 했을 때 별 생각없이 따라가는 관객입니다. 그런 관객은 허겁지겁 시간에 맞춰서 공연장에 가고, 늦게 도착해서는 급한 마음으로 공연을 즐기지 못합니다. 좋은 관객은 그 반대입니다. 자신이 보고 싶은 작품을 심혈을 기울여 고르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티켓을 사고, 달력 날짜를 지워가며 공연일을 기다리는 거죠. 공연 15분 전에 미리 도착해서 흥분과 기대를 모아 온 마음으로 공연을 즐겨보세요. 그렇게 노력하면 좋은 관객이 됩니다.”

그는 “진정 공연을 즐기는 좋은 관객들이 모이는 공연은 곧 ‘좋은 공연’이 되기 마련”이라며 “좋은 관객이 되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 톡톡 입문법
1930년대 미국서 발달… 1980년대 ‘오페라의 유령’ 등 4대 뮤지컬로 황금기

뮤지컬의 기원은 귀족의 전유물이던 오페라가 영국 산업혁명 이후 대중적으로 변주되기 시작한 데서 찾는다. 그러나 ‘뮤지컬 발달사’는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맞물리면서 본격화된다. 설도윤 뮤지컬 프로듀서는 “뮤지컬은 미국의 역사”라고 설명한다. 1930년대 미국의 영화산업이 발달하면서 뮤지컬도 영화와 함께 발전했다.

뮤지컬의 소재와 주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함께 달라졌다. 천편일률적인 사랑이야기로 일관됐던 시대를 지나, 불문율로 여겨졌던 정치와 종교가 예술의 소재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에 들어서다. 미국 이민자의 이야기를 다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년작),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인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1971년작) 등이 대표적이다. 1980년대는 ‘4대 뮤지컬’인 <오페라의 유령> <캣츠> <미스 사이공> <레미제라블> 등 대형 뮤지컬의 초연이 이뤄진 황금기였다. 1990년대에는 디즈니사가 뮤지컬 사업에 본격 뛰어들면서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가 뮤지컬의 대표적인 중심지로 떠올랐다.

뉴욕의 브로드웨이는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뉜다. 상업적인 대형 뮤지컬을 공연하는 ‘브로드웨이’와 브로드웨이의 상업주의에 반발해 시작된 ‘오프 브로드웨이’, 더욱 전위적인 연극운동을 펼치는 조류인 ‘오프-오프 브로드웨이’다.

세계 뮤지컬의 또 다른 중심지는 영국 런던의 웨스트엔드다. 대표적인 뮤지컬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영국 출신이라는 점에서 정통성이 강조된다.

한국의 경우 2001년 <오페라의 유령>이 무대에 올려진 이후로 뮤지컬 시장이 급성장했다. 오늘날 한국 뮤지컬 시장의 산업 규모는 연간 3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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