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레이디 문화톡톡](8) 셰프 레이먼 킴이 말하는 ‘요리사로 산다는 것’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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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해외에서 ‘스펙’ 쌓기보다, 한자리에서 오래 요리한 사람이 훌륭한 셰프”

음식은 문화의 결정체이다. 식재료는 농수산업의 영역이고, 각지로 신선하게 실어나르는 것은 기술의 영역이며, 맛깔난 조리는 과학과 미각의 조화로 이뤄진다. 요리사는 사람들의 뼈와 살을 구성하는 즐거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경향신문 연중기획 ‘알파레이디 문화톡톡’은 인기 셰프인 레이먼 킴(39)과 함께 ‘요리사로 산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캐나다 교포 출신인 그는 2000년 캐나다 레드우드그릴의 헤드셰프를 거쳐 시리얼 고메의 총주방장을 거친 뒤 현재는 ‘테이블 온더 문’의 총주방장을 맡고 있다. ‘상남자’풍 외모의 킴 셰프는 지난 28일 경향신문 5층 북카페에서 열린 강연에 참가한 요리 꿈나무들의 질의에 꼼꼼하게 답변했다. 이하 강연을 요약정리했다.

셰프 레이먼 킴이 지난 28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알파레이디 문화톡톡 강연에서 ‘요리사의 길’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셰프 레이먼 킴이 지난 28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알파레이디 문화톡톡 강연에서 ‘요리사의 길’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 요리는 구도의 길

어쩌다 보니 20년째 요리만 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매일 아침이 슬럼프다. 나를 따라오는 동료가 6명이라는 책임감, 돈 받고 팔 만한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 섭씨 45도의 찜통더위인데도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제대로 틀지 못하는 주방이라는 공간을 생각하면 그렇다. 소나 닭 같은 생명을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돈을 번다는 것도 미안할 때가 많다. 하지만 나는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기에 매일 노력할 수밖에 없다.

요리를 시작한 곳은 부모 따라 이민갔던 캐나다이다. 항공학교에 다녔지만 기장 자격증을 딸 만한 실력이 되지 않았다. 우연히 학교 식당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보고 음식 만들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힘들었다. 요리하다가 팔에 상처를 입기 일쑤였다. 부모님에게 지원받아 카페나 차릴까 싶었지만 나 자신에게 부아가 치밀었다. 내가 느슨해지니 사람들도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딱 1년만 요리를 해보자고 다짐했다. 평생 한인타운에서만 머무는 이민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130㎞ 떨어진 먼 식당으로 출퇴근을 했다. 체구 때문에 기죽지 않으려 일부러 140㎏까지 살을 찌웠던 나는 ‘예스, 노’ 외에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셰프(부주방장)가 무시하지 않는 수준까지 올라가고 싶었다. 매일 남아서 야근했다. 2~3년간 매일 17시간씩 일했다. 내 유일한 장점은 성실성이었다. 주방에서만 살다시피 했지만 사회적으로 격리되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외톨이였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오기로 결심했다.



■ 셰프라는 직책

22살 때 당시 26년 전통의 레드우드그릴의 주방에 들어갔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할아버지 셰프가 자상하게 하나하나 일을 가르쳐주셨다. 27살 때 사장이 내게 셰프직을 제의해왔다. 파격이었다.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수락했다. 전 셰프는 불같이 화를 냈고 주방 스태프는 반발했다. 16명 중 8~9명이 동시에 사직했다. 빈자리를 메우기 어려웠다. 내 요리는 하지 못하고 3년간 기존 레시피만 답습했다. 그때 절실하게 느낀 점은 능력이 있을 때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겉멋 때문인지 어린 셰프들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기회를 너무 빨리 주더라.

셰프는 100인분 요리를 차려냈을 때 60~70명이 좋아하는 음식을 차릴 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의 레스토랑이 없는데 셰프라고 자칭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셰프는 지휘자다. 주방 직원들의 능력을 끄집어내서 시간에 맞게 손님들에게 요리를 제공하는 역할이다. 한 요리 드라마에 보면 주방에서 셰프가 직원들한테 ‘지금 나가’라며 화를 내더라. 물론 주방에서 욕은 많이 하지만 그런 셰프 중 성공한 이는 만나지 못했다. 셰프라는 직업은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다. 동료들은 모두 인격체이자 한 가정의 소중한 가장이다.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7년 전 처음 스태프로 채용했던 친구가 내달 내가 새로 문 여는 작은 식당의 셰프가 됐다. 마흔살 넘으면 자신의 식당을 개업하는 요리사들을 위한 책을 쓸 것이다. 내가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어서다.

■ 여기서 뛰어라

주 40시간 법정근로시간을 지키는 주방은 거의 없다. 어린 친구들이 하루에 10~11시간 일한다. 일을 안 하면 배우지 못하니 따라가질 못한다. 19년 동안 12시간씩만 일했으면 결코 난 현재 위치에 오지 못했을 것이다.

젊은 분들은 외국에 요리공부를 하러 많이 나간다. 하지만 과연 인생에 큰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나는 13년을 외국에 살았어도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 안 한다. 화려한 스펙쌓기는 중요하지 않다. 가장 성공한 사람은 자격증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이다. 여러 나라의 음식을 공부했더라도 자신의 것을 연습할 시간이 없다면 이도저도 아닌 음식을 만들게 되고, 레스토랑 경영에 실패한다. 미슐랭 식당 등을 전전하며 접시 닦은 이보다는 동네 중화식당에서 10년 요리한 이의 실력이 더 출중하다. 실력은 지금 여기에서, 자신의 나이와 스케줄에 맞게 착실히 쌓는 것이다.

나는 아침에 칼라 빳빳한 요리복을 입고 일을 시작하지만 오후 1시면 쉰내가 나고 저녁이 되면 꼭 걸레같이 느껴진다. 겨드랑이 땀자국 때문에 나는 흰 요리복을 안 입는다(웃음). 어쩌다 운이 좋아서 20년지기 친구 따라 방송에도 출연하게 됐지만, 내 본분은 요리사다. 약속한 재료를 갖고 요리해서 약속한 가격을 받으면서도 사회적·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 내 목표이다.

▲ 톡톡 입문법
두려워 말고 일단 주방으로… 창의적 요리를 위해 독서는 필수


제대로 요리를 시작하고 싶은 초보라면, 레이먼 킴 셰프의 조언대로 일단 두려움없이 주방으로 향한다. 내 주방도 남의 주방도 좋다. 요리를 처음 시작하는 나이 역시 중요하지 않다. 기자 출신으로 뒤늦게 요리사가 된 박찬일 셰프의 사례도 있다. 레이먼 킴 셰프는 “누구나 처음엔 양파도 제대로 못 썬다”면서 “죽을 듯 간절한 심정으로 주방에 들어가보면 요리에 대한 감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주방에서 남녀 성별은 의미없다. 그는 “TV 드라마 <파스타>를 보면 남녀 요리사가 연애를 하는데 실제 현장과는 거리가 있다”며 “주방의 열기 속에 땀에 녹아 흐르기 때문에 여자 요리사는 화장을 못하고 남자 요리사는 헤어제품도 바르지 못한다”고 말했다. 열정과 프로정신만이 요리사로서의 성패를 가른다.

그는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론을 갖추지 못한 요리사는 요리기계에 불과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도서목록 구성은 요리책과 일반서적 절반씩으로 한다. 그는 “<초한지>부터 요즘 책까지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다룬 책이라면 요리가 꼭 등장하기 마련이고, 다른 사람들의 요리에 대한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창의적인 요리의 바탕을 닦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서적을 최소한 한 달에 한 권은 읽는다.

요리 초보자들이 참고하기 좋은 책은 대체로 푸드 스타일리스트들이 펴낸 것들이다. 정확하게 계량된 재료 분량까지 들어 있다. 셰프들이 펴낸 책들은 소장가치가 있는 ‘스타일북’인 경우가 많다. 요리 사진은 근사하지만 셰프들의 손맛이나 업소 주방의 강한 화력을 이용한 요리 등은 일반 가정에서 따라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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