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톡톡 나와 만나는 시간](9)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전문의 김병수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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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대인관계·자기문제, 심심할 정도로 심리적 거리 유지하세요”

경향신문 연례기획 ‘심리톡톡-나와 만나는 시간’ 9월 강연은 ‘결혼과 여성, 치유가 필요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강의실에서 열린 이번 강연에는 기혼여성의 불행감에 대해 분석한 <사모님 우울증>의 저자인서울아산병원 정신과 전문의 김병수 선생이 강연자로 나섰다. 그는 “정신과를 찾는 대다수의 환자는 40~60대 여성으로, 여성 우울증이 남성의 최고 2.5배에 달한다”면서 대인관계와 자기문제에 대해 “심심할 정도의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라”고 권했다. 이번 강연에는 우울증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다양한 그림들이 활용됐다.

경향신문 연례기획 ‘심리톡톡-나와 만나는 시간’ 9월 강연이 지난 24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열렸다. ‘결혼과 여성, 치유가 필요해’라는 주제의 이번 강연을 진행한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전문의 김병수 선생은 대인관계 및 자신의 문제에 대해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라”고 조언했다. | 김영민 기자

경향신문 연례기획 ‘심리톡톡-나와 만나는 시간’ 9월 강연이 지난 24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열렸다. ‘결혼과 여성, 치유가 필요해’라는 주제의 이번 강연을 진행한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전문의 김병수 선생은 대인관계 및 자신의 문제에 대해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라”고 조언했다. | 김영민 기자


■ 지나치게 정서적이고 관계중심적인 여성들

우리는 모두 우울합니다. 신달자의 <너는 이 세 가지를 명심하라>를 보면, 호화 저택에서 고급 음식 앞에 포도주잔을 들고 있는 사람도 결국은 우울하다고 하죠. ‘누구나’ 우울하기에 우울을 병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울을 통해 더 힘들어지는 분이 있고 덜 힘들어하는 분도 있어요. 머릿속에 좋은 이미지를 많이 갖고 있으면 기분 좋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시어머니를 떠올리면 화가 치밀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면 콩닥거리는 것은 뇌가 현실과 이미지를 구분하지 못해서입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우울한 첫번째 이유는 정서·관계중심적 성향 때문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이라고 덜하지도 않아요. 상담을 해보면 똑같이 사업을 하는 분인데도, 남자 사장님은 사업 스트레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여자 사장님은 자식, 남편 스트레스를 말합니다. 사회관계망 속에서 많이 쓰는 단어를 분석해보면 남자들은 비속어를 가장 많이 쓰지만, 여자들은 ‘당신(You)’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씁니다. 쓰는 단어가 다른 만큼 사고방식도 다르겠죠.

이에 대한 제 처방은 세 가지입니다.

제임스 티소 <흥미로운 이야기>

제임스 티소 <흥미로운 이야기>


첫번째 처방은 ‘남편이 내 마음을 알아주길 기대하지 말라’입니다. 그냥 남편도 불쌍하고 힘없는 피조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세요. 대부분의 남녀 관계는 제임스 티소의 그림 ‘흥미로운 이야기’와 비슷해요. 제복을 입은 남자는 지도를 펼쳐놓고 자신의 업적을 자랑합니다. 중년 남자 대부분이 자신의 삶과는 그다지 관계없지만 정치, 경제, 사회 문제 이야기를 즐기는 것처럼요. 반면 여자는 지루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고 손만 다소곳이 모으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관심사가 다르니 소통이 잘될 리가 없지 않겠어요.

조지아 오키프 <달로 가는 사다리>

조지아 오키프 <달로 가는 사다리>


두번째 처방은 ‘사랑의 힘을 너무 믿지 말라’입니다. “남편이 나를 사랑한다면 담배를 끊어야 하지 않느냐”며 서운해 하는 60대 부인을 뵌 적이 있어요. 그분을 보고 ‘사랑의 힘을 너무 믿는 게 사람을 더욱 괴롭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여성들이 ‘사랑이 식으면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집착하고요. 하지만 사랑의 힘은 그렇게 크지 않고, 사랑이 조금 식는다고 큰일이 생기지도 않습니다. 조지아 오키프의 ‘달로 가는 사다리’를 보면 사랑과 결혼에 대한 열망과 절망이 담겨있습니다. 결혼의 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 달은 사실 꽉찬 보름달이 아니라 ‘반달’에 불과하고, 그 이상에 다다르기 위한 사다리는 달에 닿지 않아요. 사다리에 높이 오를수록 떨어져서 아프기만 하고 상처는 더 커집니다.

귀스타브 카유보트 <오르막길>

귀스타브 카유보트 <오르막길>


세번째 처방은 ‘그래도 같이 사는 게 훨씬 낫다’입니다. 삶의 의미는 내가 아닌 누군가를 통해 찾아집니다. 누군가와 함께 있지 않으면, 서로가 연결돼 있지 않으면 삶의 의미를 찾기 힘듭니다. 이혼을 ‘하드디스크가 쪼개지는 것’이라고 묘사하죠. 결혼은 하드디스크에 추억을 남기는 것인데, 쪼개지면 내 삶의 반쪽이 날아갑니다.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오르막길’을 보면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오르막길을 걸어갑니다. 결혼하면 부부 관계는 오르막길의 시작입니다. 갈등하고 삐걱거릴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이 두 남녀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걸어갑니다. 꽤 편안해보이죠.

여성이 관계중심적이라면, 관계를 유지하는 3가지 철칙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그럴 수도 있겠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 후 “그래도 나는 (그리고 너는) 잘하고 있다”고 인정해줘요. 가장 중요한 마지막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을 원한다”고 말해주는 겁니다. 이것은 나를 지키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해가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 갱년기, 피해갈 수 없는 생리적 변화

여성이 더 우울한 두번째 이유는 바로 생리적 변화 때문입니다. 갱년기 때에는 아무리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도 맥을 못 춰요. 의지나 성격, 습관 등 모든 것을 뒤집어 엎습니다. 40~50대 여성 10명 중 8명이 우울해합니다. 캐럴 웨이트의 ‘정원의 데이지’를 보면 갱년기를 맞은 여성에 대한 이미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벽돌색은 어둡고 하늘에도 구름이 가득하고, 창문들은 다 닫혀서 단절된 느낌이 듭니다. 그림 구석으로 걸어가고 있는 여인은 두툼한 외투에 보라색 스카프를 두른 촌스러운 모습입니다.

이에 대한 처방은 ‘운동과 긍정적인 마음가짐’입니다. 땀이 나면 운동을 더 열심히 하고, 홍조가 생기면 ‘혈색이 좋구나’ 하고 여기세요. 여성호르몬이 감소하면 예전과 똑같이 먹어도 살이 더 찔 수밖에 없어요. 운동을 더 많이 하고 ‘나는 예쁘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폐경이 된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폐경 후의 열정’이라고 하는데, 폐경 후 훨씬 더 자유로워졌다는 분도 많아요. 갱년기 이후에 자기 주장이 강해져서 하고 싶은 일을 더욱 열심히 하는 분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나요?

당신은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나요?


■ 너무 많은 생각은 우울을 부른다

반추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입니다. 갱년기 여성들은 “옛날 일이 자주 생각나서 괴롭다”고 말하는데, 우울하면 반추는 더 늘어납니다. 악순환이에요. 그때에는 ‘아, 이 생각은 반추구나. 이제 그만하자’고 연습해야 합니다. 자신이 하는 생각이 반추라는 것을 알면 그것만으로도 치료가 시작됩니다.

여성이 더 우울한 세번째 이유는 ‘너무 많은 생각’ 때문입니다. 특히 우울증세가 있는 여성들의 사고습관 중 하나가 뭐든지 자기 잘못으로 돌린다는 거예요. 여자들이 왜 반추와 생각이 많은지는 페르난도 보테로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여성 2명, 남성 2명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데 남성이 주머니에 카드 하나를 숨겨놓고 여성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 남성을 보고 있어요. 그런데 게임의 룰이 공정하지 않아요. 여성은 옷을 입지 않고 있어서 카드를 숨길 수가 없는 반면, 남성은 마음만 먹으면 숨길 수 있거든요. 주부들은 아마 이런 느낌일 거예요. 남편은 사회생활을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자기 정당화를 할 수 있지만, 주부들은 자기합리화를 할 여력이 없고 생각만 많아져요. 이 때문에 생각을 멈추기 힘든 구조 속에서 지내고 있는 겁니다.

이런 처방을 내려드리고 싶어요. ‘생각을 바꾸려 하지 말고 생각에 대한 내 생각을 바꾸라’는 겁니다. 이유를 찾지 말고, 의미를 찾아 움직이세요. 생각은 절대 바뀌지 않아요. 죽을 때까지요. 생각을 기차처럼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세요. 기차를 멈추거나 방향을 틀어버리려 하면 그저 죽기밖에 더하겠어요. 그냥 지나가도록 보는 겁니다.

모딜리아니의 ‘부채를 든 여인’(왼쪽 위 그림)을 보면 멋진 집안에서 우아하게 앉아 있지만 공허한 여인의 표정이 나타나 있죠. 이 여인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진짜 살아가야 하는 모습은 존 싱어 사전트의 ‘엘 할레오’(아래) 속 여성일 겁니다. 몰입에 대해 잘 보여주는 그림인데요. 여인은 음악과 춤에 취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죠.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고 뒤에서는 호응해주고요. 이런 느낌으로 사는 것이 의미를 찾는 느낌이 아닐까요.

주부로만 살았던 40~50대 여성들은 주변 사람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경우가 많아요. ‘삶의 의미’ ‘삶의 가치’는 외부에서 찾는 거거든요. 주부들은 의미나 가치를 찾기에 활동영역이 너무 좁기 때문에 주변인을 통해 의미를 찾고자 하죠. 반면 사회생활하는 남편들은 의미를 찾기가 보다 수월해요.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여성들은 종교활동이나 지역봉사처럼 틀 밖으로 넘어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자신이 조금 더 강하게 살고자 한다면, 내 삶의 영역을 크게 확장하고 자기 자신을 밖으로 내어놓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용기가 없어서 스스로를 자꾸 주저앉히기 때문입니다. 한번쯤은 괴로워야 하고, 또 싸워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행복해지는 방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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