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톡톡 나와 만나는 시간](10)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윤대현 교수
이고은 기자 freetr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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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피로사회에 방전된 우리… 마음의 문 열고 자기 연민해야 재충전”

방전 직전의 스마트폰 배터리처럼 현대인들은 하루하루 버텨내듯 살아간다. “열심히 살자” “할 수 있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하지만 “좀 쉬자” “이미 잘하고 있어” 같은 자기 응원은 드물다. 의미있는 삶을 목표로 자신을 끊임없이 채근할 때, 우리는 내면의 모든 에너지가 방전되어버리는 ‘소진증후군’(번아웃 신드롬)에 빠지기 쉽다.

경향신문 연중기획 ‘심리톡톡-나와 만나는 시간’ 10월 강연은 현대인의 소진증후군을 주제로 진행됐다. 지난 22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강의실에서 열린 이번 강연은 스트레스 의학 전문가이자 <윤대현의 마음성공> 저자인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맡았다. 윤 교수는 “방전된 우리 자신을 충전시키는 데 필요한 에너지원과 연결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의 문을 여는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스스로를 연민하는 순간 재충전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연중기획 ‘심리톡톡-나와 만나는 시간’ 10월 강연이 지난 22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강의실에서 열렸다. ‘현대인의 소진증후군’을 주제로 진행된 이날 강연에서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방전된 마음을 충전하려면 심리적으로 문을 열고 스스로를 연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경향신문 연중기획 ‘심리톡톡-나와 만나는 시간’ 10월 강연이 지난 22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강의실에서 열렸다. ‘현대인의 소진증후군’을 주제로 진행된 이날 강연에서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방전된 마음을 충전하려면 심리적으로 문을 열고 스스로를 연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 현대인을 괴롭히는 ‘소진증후군’

인류가 발전해온 것은 우리 마음속의 ‘조정 전략’ 덕분이었을 겁니다. “하기 싫더라도 내일을 열심히 준비하자”며 스스로의 마음을 관리하는 것이죠. 분명 효율적인 전략이지만 빈번하게 쓰다보면 에너지를 쓰기만 하고 충전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소진증후군은 이때 찾아옵니다.

소진증후군의 초기증상을 단계별로 짚어볼까요. 1단계에서는 ‘깊은 잠을 못 잔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건망증이 생긴다’ ‘짜증이나 화가 난다’ 같은 증상을 호소합니다. 상점이나 직장에서 과도하게 화를 내기도 하죠. 제 아무리 성격이 좋아도 뇌가 방전되면 관계에 있어 예민해집니다. 공감능력이 떨어져서 소통에도 어려움을 겪게 되죠. 신체적으로는 어지럼증이나 이명, 소화불량 같은 증상이 나타납니다. 2단계에서는 심리적 회피반응을 보입니다. ‘다 때려치우고 어디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죠. 회피가 꼭 나쁘지는 않지만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안됩니다. 또한 뇌가 방전되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현재에 몰입하지 못하는 반면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해집니다. 방전되다보니 현재를 못 느끼고 그러다보니 또 방전되는 악순환에 빠지죠.



■ 스스로를 잘 충전하는 방법

우리의 마음을 충전하려면 심리적으로 문을 열어야 합니다. 휴대폰을 충전하려고 해도 콘센트에 충전기를 꽂아야 하잖아요. 그처럼 내 약점과 슬픔까지 다 여는 용기를 가져야 해요. 쥐실험에서도 신체적 상처를 혼자 안고 있는 쥐보다는 친구와 함께 있는 쥐의 회복 속도가 훨씬 빠른 것으로 나타난 바 있습니다.

내가 의미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면 스트레스 관리는 자동적으로 됩니다. ‘내가 근사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고 살겠다는 마음이 필요하죠. 하지만 대기업에서 고위직으로 승진한 분들일수록 삶에 대한 만족감이 떨어지는 경우를 발견합니다. 너무 달려가다가 방전돼서 행복을 느낄 찰나들을 놓쳐버린 것이죠. 뇌의 ‘감성장치’에 저장이 되지 않은 겁니다. 열심히 살았는데도 아무것도 안 한 것처럼 느껴지고 과거가 무의미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건 잘 기억하겠다는 의지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방전돼 있으면 아무리 의식적으로 노력해도 가치를 느낄 수 없습니다.

행복해지는 방법은 둘 중 하나입니다. 행복한 일이 굉장히 많이 생기거나, 또는 자신이 행복을 잘 느끼는 마음을 갖는 것이죠. 하지만 좋은 일만 많이 생기기엔 세상사가 자기 마음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다고 하더라도 행복감은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마음이 금방 새로운 상태에 적응하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행복을 더 많이 느끼는 뇌를 갖는 것이 지름길입니다. 강도 100의 행복감을 한꺼번에 느끼는 것보다 0.5짜리 행복이 매일 터지는 게 더 좋다고도 해요.


■ ‘연민 공장’을 돌려라

우리 마음에는 세 개의 공장이 있습니다. 첫 번째가 스트레스 공장입니다. 스트레스는 성장하고 성취하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죠. 저는 천국에도 스트레스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데, 그 자체가 존재의 한계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에요. 스트레스를 무조건 없애는 건 불가능합니다. 지옥이 있다면 아마 권태롭지 않을까 저는 공상합니다. 최근 연구결과를 보면 인간이 슬픔보다 더 견디기 힘들어하는 게 바로 권태라고 해요. 일을 하는 것보다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훨씬 힘들죠.

두 번째가 연민 공장입니다. 스트레스 공장이 “열심히 해” “더 달려”라고 하는 반면 연민 공장은 “좀 쉬어” “넌 정말 멋있어”라고 합니다. 둘은 서로 라이벌 관계입니다. 무엇이 좋고 나쁘냐의 문제가 아니죠. 둘 사이의 균형이 맞아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리스크 사회’ ‘피로사회’라고 불릴 만큼 스트레스 공장만 강하게 돌아가고 연민 공장이 거의 작동하지 않아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쾌락 공장, 혹은 분노 공장입니다. 연민 공장이 잘 작동하지 않으면 쾌락 공장이 돌아갑니다. 과식, 과음, 담배, 쇼핑 등의 자극을 요구하게 되죠. 현대인들이 과식을 하는 이유는 몸의 허기가 아니라 심리적 허기 때문입니다. 적절하면 좋은데 이게 과하게 작동할 경우에는 윤리적 문제가 발생합니다. 훌륭한 성취를 이룬 사람이 성범죄를 저질러 단박에 추락한 사례 등이 있죠. 어느 지위에 오른 순간 마음의 에너지가 다르게 쓰이는데, 평소에 도덕적인 사람도 본능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면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겁니다.

저는 과거에 스트레스 관리를 ‘소맥’으로 했습니다. 술을 적당히 마시면 해소할 수 있었어요. 7~8년 동안 민원 하나 없는 의사로 열심히 살았는데, 그러다 번아웃이 왔습니다. 에너지가 자꾸 소모되기만 했어요. 이를 어쩌나 걱정하다가 명상을 하루에 10분씩 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좋은 뇌 충전법을 추천해달라고 하시는데, 저는 명상을 추천합니다. 실제 해보신 분들은 삶이 마술처럼 변했다고들 하세요. 숙제처럼 여기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명상을 꾸준히 하다보면 연민 공장이 작동됩니다. 저는 어느 날 약속에 늦어서 뛰어가야 하는 데 갑자기 벚꽃을 보고 차를 세운 적이 있어요. 하늘과 태양이 저를 사랑하는 느낌이 들더군요. 이런 걸 ‘초월성 경험’이라고 합니다. 이건 창조성과 연관이 있는데, 창조와 공감 능력은 ‘멍 때릴 때’ 커집니다.



■ 혼자서는 힐링이 되지 않는다

연민 공장을 돌리는 세 가지 방법을 더 추천하자면 사람, 자연, 문화와 우리의 뇌를 연결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힐링이 안됩니다. 거울을 보고 “넌 참 근사해”라고 아무리 외쳐도 에너지를 하나도 얻을 수 없어요. 나 아닌 타인,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저 사람에게 비친 내 모습이 근사할 때 충전이 되는 겁니다. 그렇지만 사람만으로도 한계가 있어요. 사랑받고 싶은 마음 이면에 자유와 독립에 대한 욕구도 강하니까요. 그럴 때 자연과 문화를 만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들 누구에게나 억울한 일은 생기는데, 자연과 문화를 즐기다보면 자신의 억울한 현실을 객관화할 힘이 생깁니다. 그럴 때 또 연민 공장이 돌기 시작합니다. 자연을 볼 때에는 자연을 보는 것 자체가 목표이고, 미술관에 가면 예술을 즐기는 것 자체가 목표가 돼야 해요.

자신을 조정하는 데 익숙한 현대인들에게는 멈춰있는 연민 공장을 돌리는 것이 매우 필요합니다. 우리는 지나칠 정도로 모범생으로 살아왔어요. 인생의 10% 정도는 ‘날라리’로 살아도 됩니다. 지금 당장 A4 용지 2장 중 한쪽엔 6개월 후의 단기적 목표를 적고, 다른 한쪽엔 버킷리스트를 적어보세요. 겹치는 것이 하나도 없다면 너무 모범생으로 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 정도는 당장 실천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연민 공장을 작동시키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나치 독일 치하에서 살아남아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쓴 빅터 프랭클은 “왜 사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삶의 의미를 놓치지 않은 사람들은 수용소에서도 생존했다고 해요. 상황과 한 발짝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하죠. 요즘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에서도 이 같은 마음훈련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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