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톡톡 나와 만나는 시간](12) 정신과전문의 김진세 박사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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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행복은 각자에게 다 달라요, 똑같으려고 하지 마세요”

경향신문 2014년 연례기획 ‘심리톡톡-나와 만나는 시간’의 마지막 강연에서는 <심리학 초콜릿> <애티튜드>의 저자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김진세 박사가 ‘행복’에 관해 이야기했다. 한국의 평균적인 경제수준은 30년 전에 비해 나아졌음에도 개개인의 행복도는 오히려 퇴보했는데 혹시 ‘행복’에 대한 정의가 잘못됐기 때문은 아닐까. 김 박사는 자신의 경험과 명사 인터뷰, 상담 등을 사례로 행복에 관해 명쾌하게 풀어냈다. 지난 18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여적향에서 진행된 강연의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정신과전문의 김진세 박사가 지난 18일 서울 경향신문사 여적향에서 가진 강연에서 ‘행복은 무엇인가’에 대해 독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소득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자기계발 등에 쓸 때 행복 수준이 높아진다”며 소득 증가가 꼭 행복감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 김정근 기자

정신과전문의 김진세 박사가 지난 18일 서울 경향신문사 여적향에서 가진 강연에서 ‘행복은 무엇인가’에 대해 독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소득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자기계발 등에 쓸 때 행복 수준이 높아진다”며 소득 증가가 꼭 행복감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 김정근 기자


■ 우리의 행복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 100명 중 17명


세계경제포럼(WEF) 2012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세계 19위입니다. 반면 같은 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행복지수에서 한국은 34개국 중 32위입니다. 우리보다 낮은 나라는 터키와 멕시코뿐이에요. 같은 통계에서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는 꼴찌 수준입니다. 행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행복해야 가정이 행복해지고 아이들을 행복하게 양육할 수 있다”는 겁니다. 행복은 대물림되는 것이거든요. 전 세계에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100명 중 17명뿐이라고 해요.

여성의 행복지수를 볼까요. 여성지 ‘엘르’가 올해 42개국 23만4000여명의 여성을 상대로 조사했습니다. 전 세계 여성들은 평균 70%가 행복을 느끼는데 한국 여성들은 40%만 행복을 느낀다고 해요. 우리나라 여성의 행복 순위는 39위 정도입니다. 자살률을 볼까요. 2007년 통계를 보니 OECD 국가 중 1등입니다. 제가 2007년 이후로는 통계를 새로 정리하지 않았는데, 그 뒤로 쭉 1등이거든요. 심지어 평균의 2배입니다. 2012년부터는 전 연령층 1위입니다. 자살 많이 하는 사회를 행복하다고 할 수는 없죠.



■ 행복의 정의
‘행운’을 찾으려고 ‘행복’을 짓밟아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고 세 잎 클로버는 ‘행복’입니다. 우리는 흔히 행운을 찾으려고 행복을 짓밟고는 하죠.

유명인들을 인터뷰하면서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구호활동가인 한비야씨는 “행복은 열정과 도전”이라고 말했습니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행복은 지금이다”라고 표현했어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면 안된다는 뜻이죠. 박칼린 뮤지컬 음악감독은 “행복은 균형”이라면서 “마음과 몸, 머리의 3가지 균형이 맞아야 한다”고 했어요. 엄홍길 등산대장은 “행복은 노력하는 것이다.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했고요.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추억할 게 많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고 부자”라며 “눈을 감을 때 떠올릴 수 있는 노을이 있는 게 행복”이라고 했어요. 박원순 서울시장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은 “스스로 참 만족한다고 느끼는 때, 참 자랑스럽다고 생각하는 때가 행복”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듯 행복은 각자 다 달라요. 똑같으려고 하지 마세요. 다만 심리학적 정의를 내려보자면 “행복은 즐거움과 의미를 갖는 포괄적인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즐거움’과 ‘의미’ 두 가지가 다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행복의 조건
‘타고난 팔자’는 행복의 30% 차지


행복의 조건으로는 뭐가 있을까요. 먼저 ‘돈’에 대해 말해 볼게요. 명목 국민총소득(GNI) 기준으로 보면 우리의 경제 규모는 1953년 483억원에서 2013년 1441조원으로 2만9833배 커졌고요. 1953년 67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013년 2만6205달러로 증가했습니다. 그만큼 더 행복해졌을까요. 통계청의 ‘2013년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자신의 사회경제 지위를 하층이라고 판단하는 국민이 46.7%에 달했습니다. 1988년(36.9%) 이후 최고치인데요. 2010년 기준 전 세계 중산층은 58%라고 해요. 소득은 늘었는데 행복지수는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죠.

‘이스털린의 역설’은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이 1974년 논문을 발표하며 알려진 개념인데요.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란 가정을 하고 연구를 했죠. 그런데 결론은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돈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결과가 반대인 연구도 있어요. 2013년 뉴질랜드 오클랜드대학 연구 발표였는데요. “소득이 높을수록 더 행복하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그래서 저는 ‘행복이란 무엇인가’의 강연자인 탈 벤 샤하르에게 물어봤어요. 그는 “돈의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하더군요. 자기계발이나 행복해지는 쪽으로 돈을 써야 한다는 거예요.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의 먹고살 만한 돈’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지만 말이죠. 그래서 공적 복지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와서 “저는 2년 동안 한 푼도 벌이가 없었는데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나요”라고 묻길래 직장부터 잡으라고 했어요. 본인이 만족하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돈은 벌어야 하죠.

행복은 ‘즐거움’ 혹은 ‘쾌락’이라고 단정짓기 어려워요. 뇌는 건강하지 못한 쾌락에 중독되고, 급기야 행복이 무엇인지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 이릅니다. 술이나 마약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사소한 중독들이 많습니다. 유행하는 소비재를 갖지 못하면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잖아요.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의 사람들은 내면이 작아져서 바깥으로 자꾸 과시하려고 듭니다.

성공해야만 행복한가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익과 손실을 나눠서 본다면 성취주의자들은 미래의 이익을 위해 현재의 손실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만 생각한다면 쾌락주의, 미래도 현재도 생각하지 않으면 허무주의죠. 하지만 행복은 미래와 현재의 이익을 모두 감안하는 것입니다. 은퇴 시점이 돼서 또 뭔가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처럼 현재와 미래를 적절하게 배분하는 게 중요하죠.

‘팔자’는 실제로 행복의 30%를 차지합니다. 타고나는 것이죠. 진화론적으로 남성은 여성보다 행복을 쉽게 느끼지 못합니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유전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났다면 전쟁이나 테러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데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실제로 환경이 좋지 않으면 행복하기 어렵습니다. 또 다른 예로 ‘로또’에 당첨됐다고 합시다. 그 행복은 얼마나 갈까요. 연구에 따르면 1년도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반대로 만약 내가 교통사고로 하반신 불구가 됐다면 그 고통은 얼마나 갈까요. 그 고통도 1년이 가지 않습니다. ‘세트 포인트(set point)’라는 게 있습니다. 불행에 빠져도 그 불행 때문에 더 밑으로 가라앉지 않는 지점이죠. 밑바닥을 치고 다시 평균치로 올라옵니다.

행복은 교육하기 나름일까요. 제 경험으로는 사실인 듯해요. 스파르타 방식으로 아이들을 키우면 짓눌려 지내지만 조직사회에 잘 적응합니다. 명령에 잘 순응하죠. 대기업처럼 남성 위주 문화에서는 더 유리합니다. 하지만 자칫 우울증에 빠지기도 합니다. 아이를 자유방임 방식으로 키우면 스스로는 행복하지만 조직사회에는 잘 적응하지 못합니다. 어느 쪽으로도 좋습니다. 하지만 더 좋지 않은 건 어떨 땐 스파르타, 어떨 땐 자유방임으로 교육하는 겁니다. 아이들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다가 극단적인 경우에는 정신분열에 빠지기도 합니다. 행복이라는 측면에서는 자유방임이 조금 낫기는 합니다.

또한 감정표현을 잘할 줄 알아야 행복해집니다. 감정 표현이나 수용을 잘 못하면 불행해지기 쉽습니다. “울지 마!” “그렇게 좋아하지 마”라고 말하면 아이들이 감정을 억누릅니다. ‘자존감’도 중요합니다. ‘나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느낌이 자존감이죠. 그런데 이건 혼자 키우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자꾸 혼만 내고 사랑을 주지 않으면 ‘엄마 아빠는 왜 나를 낳았을까’ 하며 힘들어 합니다.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에서 일해도 “저는 자신감이 하나도 없어요”라고 말하는 젊은 세대들을 종종 봅니다. 지금 20·30대들이 그렇게 자랐어요.

행복은 ‘사랑’일까요. 모든 행복 연구에서 결혼은 절대적 조건입니다. 수면 연구, 건강에 관한 연구, 행복에서도 모두 결혼이 중요한 조건입니다. ‘자녀’는 어떨까요. 아이를 낳으면 2년까지는 행복감이 오르지만 아이가 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바닥을 쳐서 대학 갈 때쯤이면 다시 올라갑니다. 자식은 양면적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이죠. 성관계는 어떨까요. 행복학자들이 연구를 하지 않습니다. 워낙 중요해서 그렇죠. 반대로 ‘애정결핍’이 없는 것이 행복의 중요한 요건입니다.

행복은 인간관계로부터 오는 걸까요. 여자들이 노후 행복에 필요한 5가지는 건강, 친구, 돈, 일, 찜질방이라고 해요. 남자들은 마누라, 아내, 아이 엄마, 부인, 집사람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고독사는 2013년의 경우 확인은 1717건, 추정은 1만1200건이 넘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고독사로 노인만 죽는 게 아니라 30·40대나 50대도 많습니다. 1인 가구가 늘기 때문인 듯해요. 1인 가구가 2010년에 23.9%였는데 2030년에는 32.7%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독거 할아버지와 독거 할머니 중에서 더 오래 사는 쪽은 할머니입니다. 일단 밥을 끓여먹을 수 있어서죠. 남자들은 밥 한 번 먹으려면 차리고 설거지까지 3시간 걸립니다. 하루 세 끼면 9시간 걸리죠. 위생관리도 잘 안되고요. 할머니들은 친구들과 지낼 수 있고 관계지향적이니까 오래 살지만, 남자들은 목적지향적이어서 그렇지 못합니다. 남자들은 나이 들어서 친구도 못 사귑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의 교류입니다. 이해심이 깊어지고 배려도 깊어집니다. 그게 살아가는 데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긍정심리학을 인간관계학이라고도 합니다.



■ 행복의 공식(H=S+C+V)
자발적 노력이 차지하는 비중 가장 커


이 공식에서 H는 행복의 수준을 말합니다. S는 세트 포인트로 타고나는 것입니다. C는 삶의 조건인데 고작 전체 행복의 8~15%만 차지합니다. V는 자발적인 노력으로 가장 비중이 큽니다. 행복의 조건에서 적당한 만큼의 돈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경쟁을 통해 돈을 버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으면 바꾸기가 좀 어렵겠죠. 그리고 지속적이고 의미있는 즐거움이어야 하고, 지금 당장 행복해지기 시작해야 합니다. 나중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행복할 줄 알아야 아이들에게도 행복을 알려줄 수 있습니다. 행복한 결혼생활, 원만한 인간관계도 행복의 중요한 조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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