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톡톡’ 시즌2 - 사랑에 관하여]“다음 여행 기다리듯…20대에 첫 단추 끼우고 ‘더 큰 사랑’ 준비하세요”
글 이윤정·황경상 기자 yyj@kyunghyang.com·사진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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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6) 이병률 시인의 ‘사랑과 성숙’

경향신문 심리톡톡 시즌2 ‘사랑에 관하여’ 6월 강연은 잘 벼린 사랑의 언어로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 이병률 시인과 함께했다. ‘사랑과 성숙’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등 베스트셀러 여행산문집을 낸 그는 “사랑과 여행은 닮아 있다. 끝나고 난 뒤에야 다음에 좀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면서 “20대에 사랑을 경험하는 것은 여행만큼이나 이후 삶에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경향신문 여적향에서 진행된 강연 내용을 소개한다. 전문은 경향신문 홈페이지의 심리톡톡 코너(all.khan.co.kr)에서 볼 수 있다.


■ 여행과 닮은 사랑

오늘 강연의 화두는 동화 <고래가 보고 싶거든>입니다. “고래가 보고 싶니? 그렇다면 창문이 있어야 해. 그리고 바다도. 시간도 있어야 해. 바라보고 기다리고. ‘저게 고래가 아닐까?’ 생각할 시간. (중략) 고래가 정말 보고 싶니? 그렇다면 바다에서 눈을 떼지 마.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거야.”

고래를 기다리며 고래를 만나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은 사랑을 기다리며 사랑으로 가는 먼 여정과도 흡사합니다. 간절하지 않다면 사랑이 와도 우린 그걸 알지 못해요. 매일 보이는 그가 바로 ‘그 사람’인데도 모르는 채 떠나보낼 수도 있어요.

사랑을 잘 기다리는 사람은 정신적, 신체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나를 봤을 때 실망하지 않을 상태라야 하지요. 저는 좋은 글을 읽고 여행을 다녀오는 모든 과정이 사랑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저에게 사랑은 ‘어떤 장면’입니다. 단순한 사진 한 장이 아닙니다. 풍부한 음악성과 구체적인 냄새, 인간적인 온기가 함께 ‘뇌리에 스치는’ 장면을 이루지요. 모든 사랑은 그런 의미에서 ‘좋은 장면’이어야 합니다. 슬픔 속에 헤어졌다 할지라도 그 ‘어떤 장면’을 떠올리면 힘이 나고 더 큰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헤어졌다 하더라도 사랑했던 그 장면만큼은 우리와 끝까지 함께하면서 행복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어요.

신간 <내 옆에 있는 사람> 중에 이런 글을 썼어요. “사랑이 여행이랑 닮은 것은 꼭 20대에 첫 단추를 끼워야 한다는 점이다. (중략) 여행도 마찬가지. 20대에 혼자 여행을 해보지 않는다면 30대에는 자주 허물어질 것이다. 그리고 또 닮은 것은, 사랑도 여행도 하고 나면 서투르게나마 내가 누구인지 보인다는 것이다. 한번 빠지게 되면 중독처럼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도 닮았다. (중략) 사랑과 여행이 닮은 또 하나는 사랑이 끝나고 나면, 여행이 끝나고 나면 다음번에는 정말 제대로 잘하고 싶어진다는 것, 그것이다.”

첫 여행과 첫사랑은 20대에 첫 단추를 끼워야 합니다. 그때 사랑을 해보지 않으면 단언컨대 30대에 영혼이 매우 가난해집니다. 사람을 만나는 법, 사람을 통해서 상처를 안는 법을 비롯한 이 모든 것이 사랑을 통해서 가능하지요. 그런 훈련들을 통해서 우리는 사람의 눈을 똑바로 마주볼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이 아픈 것도 제대로 보게 되고요. 내가 아파야 아픈 사람을 헤아릴 수 있으니까요. 지금 20대이신 분들은 ‘그래, 한번 해보자, 사랑이 안 찾아오지만 한번 해보자. 여행이 좀 두렵지만 한번 해보자’며 결심해보는 건 어떨까요. 삶과 정면승부를 하는 겁니다.

이병률 시인이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독자들과 ‘사랑과 성숙’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병률 시인이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독자들과 ‘사랑과 성숙’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사랑의 빛깔은 나의 변화에서

<내 옆에 있는 사람> 가운데 또 다른 한 대목입니다. “문득 길을 가다 만나는 찐빵 가게에서 솥 바깥으로 치솟는 훈김 같은 것. 사랑은 그런 것. (중략) 시들어버릴까 걱정하지만 시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시들게 두는 것. 또 선거철에 거리의 공기와 소음만큼이나 어질어질한 것. 흙 위에 놀이를 하다 그려놓은 선들이 남아 있는 저녁의 나머지인 것.”

우리는 사랑에 대한 이런저런 정의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합니다. 사랑은 여러 색이지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달라서 매우 특별한 사람일 수도 있어요. 어떤 면에서는 내가 계절과 시기에 따라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사랑이 여러 가지 색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한생을 살더라도 사랑의 맛을 다 알고 갈 수는 없다고 감히 생각합니다.

저는 사랑을 하면서 ‘왜 결국 우리는 혼자가 되는가’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사람들은 사랑의 결론을 결혼이라 말하지만 저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혼자’에 관해 자주 생각해요. 우리는 부모에게 태어나 가족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기를 거치지만 내가 ‘나’라는 자아를 인식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게 되면서 사춘기에 접어듭니다. 혼자 있고 싶다고 하면서 사실은 혼자 있기 싫어하지요. 사랑을 하고 싶어서 몸 전체가 뜨겁게 끓어넘칩니다. 이 시기를 어떻게 잘 넘기느냐에 따라 사랑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가 결정됩니다. 20살 전후, 그때는 아직 사랑을 할 수 없는 상태랍니다.


■ ‘사랑의 장면’으로 살아간다

여러분은 사랑을 할 때 일이 잘되나요. 쉽게 깊은 잠에 빠질 수 있나요. 사랑을 하면 우리 몸과 마음은 신호를 보냅니다. 그래서 저는 뭔가를 써요. 말이 되는지 되지 않는지는 중요하지 않죠. 어느 순간 정리가 되면서 에세이나 시로 승화됩니다.

저는 어떤 면에서는 소극적이고 낯을 가리고 먼저 말을 붙이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사랑을 할 때에는 적극적이 됩니다. 시간의 냄새를 맡으려고 하고 육감을 다 사용해서 살려고 합니다. 그러니 모든 일이 다 잘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과거 방송 작가로 17년쯤 일했습니다. 매일 방송원고를 썼어요. 정말 힘들었지요. 그런데 누군가를 사랑하고 흠모했던 순간에는 원고가 정말 잘 써졌어요. 하루 일을 마치는 데 1시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여행을 가서도 그 사람을 생각하면 힘이 났지요. 사랑을 해서 썼던 원고들은 반응이 좋았어요. 예를 들어 신해철·유희열·이소라씨가 제 원고를 읽을 때 알아요. ‘이 사람이 사랑에 빠졌구나.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줘야지.’ 그러면 청취자들의 반응도 달라집니다. 댓글 수가 늘어나지요.

제가 사랑에 빠져서 동물적인 상태에 놓여 사랑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순간을 글로 쓴 적이 있어요. 두 번째 여행산문집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에 있는 ‘사랑의 냄새’라는 글입니다.

“양파 볶는 냄새는 세상의 모든 냄새를 담고 있다. 어둠과 그늘, 절벽의 햇살, 꽃잎이 짓이기며 빨아대는 습기, 간절한 한 사람의 안부, 그 모든 것을 담았다. (중략) 공간을 가득 채운 양파의 그것에는 그리운 냄새가 있다. 절절한 곡예가 있다. 그래서 집에 양파 남은 게 있느냐 없느냐는 나에게 또 여행 갈 계획이 있느냐 없느냐와 통한다. 사랑을 잃고 양파를 볶다가 그렇게 짐을 싼 적이 있다.”

저는 사랑을 잃으면 여행을 떠납니다. 언젠가 일본 데시마 섬에 초라하게 흘러들어서 그림이 걸려 있지 않은 미술관에 갔습니다. 저는 사랑을 잃은 자의 관점에서 작품을 보았어요. 그리고 그 미술관에서 굉장한 생명력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나는 실패한 게 아니라, 이 굴곡을 통해서 괜찮은 사람으로 거듭난 것이다’ 하는 결론을 얻었지요. 저는 사람의 건강한 정신 상태, 그리고 내 정신의 건강한 상태가 일치했을 때 그 사람에게 끌린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에게서 공통점을 찾으려고 하고 비슷한 온도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지요. 격차가 큰데 내가 온도를 끌어올리거나 낮춰서 온도를 맞추기가 불가능하다는 걸 우리는 압니다. 온도가 높고 낮은 어느 쪽이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는 사람에게 끌릴 수밖에 없어요. 똑같기 때문에 손을 내밀고, 심장이 뛰고 하는 겁니다.

▲ 일문일답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나’를 자각하게 될 때
누군가 말을 걸어 옵니다


♥ 딸이 곧 결혼하는데 아버지로서 해줄 수 있는 말로 무엇이 있을까요.

“두 사람이 함께 살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꾸준히 자신을 갱신하는 것입니다. 일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같이 있는 것을 뭉뚝하게 만들어버리는 ‘습관’입니다. 조금씩 새로워지고, 오래오래 함께 살아가는 게 필요하지요.”

♥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말이 있잖아요. 싱글인 저는 적극적으로 사랑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이 여행도 다녀 보시고, 혼자 있는 시간도 가져 보세요. 그러면 간절한 상태가 됩니다. 혼자 있는 시간은 불편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자각하게 됩니다. 그럼 남도 나를 알아봐줍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지요. 사랑만 하려 하지 마시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관찰해 보세요. 그러다보면 자신이 형성돼 갑니다.”

♥ 여행지에서 떠나오는 마지막 날에 어떤 느낌을 갖나요.

“돈이 없어서 돌아온 적도 있고, 도둑맞아서 돌아온 적도 있어요. 자기장에 끌리듯 지금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기분이 들어서 조금 힘듭니다. 나는 왜 그곳에 오래 살 운명이 되지 않을까 푸념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잘 돌아와야 잘 떠날 수 있습니다. 모두 순환의 고리 안에 있습니다.”

♥ 행복하신가요.

“저는 매 순간 행복합니다. 잠 못 자도 재밌고, 힘겨운 상황이 되어도 재밌고, 누가 날 오해해도 재밌습니다. 타인의 험담도 제게는 행복이에요. 넋 놓고 사는 게 아니라, 그런 것들이 바늘로 제 손끝을 콕콕 찔러주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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