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톡톡’ 시즌2 - 사랑에 관하여]“더 잘 ‘공감’해준다면… 상대가 로봇일지라도 우리는 사랑에 빠질 것”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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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7) 뇌과학자 김대식의 ‘사랑의 5가지 변주곡’

우리는 쉽게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그 순간 사랑은 흩어진다. 늘 언어의 그물은 성기다. 사랑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순간에도 사랑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한다. 내가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일까,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근거는 무엇일까.

경향신문 연중기획 ‘심리톡톡 시즌2-사랑에 관하여’ 7월 강연에서 뇌과학자인 김대식 카이스트(KAIST) 교수는 틀에 박힌 사랑이라는 ‘물체’를 여러 각도에서 새롭게 바라보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길가메시와 플라톤부터 영화 <그녀(her)>까지 ‘사랑의 5가지 변주곡’이 그 길잡이가 됐다. 지난 16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강연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전문은 심리톡톡 홈페이지(all.khan.co.kr)에서 볼 수 있다.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가 지난 16일 경향신문에서 열린 ‘심리톡톡-사랑에 관하여’ 강연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뇌가 인지하는 방식과 인공지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가 지난 16일 경향신문에서 열린 ‘심리톡톡-사랑에 관하여’ 강연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뇌가 인지하는 방식과 인공지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강아지를 설명하는 것만큼
사랑도 설명하기 어려워


<길가메시 서사시>는 약 5000년 전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만들어진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스토리입니다. 불사신이 되고 싶었던 길가메시는 불사신 우트나피시팀을 만나서 죽지 않는 약을 얻게 되지만 그걸 잃어버리죠. 불사신을 다시 찾아가서 사정하지만 약을 얻진 못합니다. 길가메시가 울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묻자 불사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집에 가서 그냥 재밌는 일 하고, 친구들하고 즐겁게 사귀고, 연인하고 사랑을 하라.” 그게 끝입니다. 5000년 전에 이미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이 나와 있습니다.

사랑이 뭐기에, 5000년 전에도 인생 비밀의 답이라고 했을까요. 답하기 어렵습니다. 훨씬 쉬운 것도 마찬가집니다. ‘강아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답할 수 있을까요. ‘다리가 네 개다’라고만 하면, 모든 동물이 다리가 네 개이기 때문에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더 섬세하게 몇천 가지 조건을 달아놓으면 하나의 강아지는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다른 강아지는 설명을 못합니다.

사랑도 똑같습니다. 사랑 그 자체는 뭘까요. 정말 오래된 질문입니다. 철학에서는 크게 두 가지 이론이 있었습니다. 유명론(唯名論·Nominalism)과 실념론(實念論·Realism)이죠. 실념론을 주장한 플라톤은 그 어딘가에 완벽한 강아지, 완벽한 사랑이 존재하는 이데아라는 세상이 있는데, 우리는 그 이데아 세상의 그림자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반면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유명론을 주장합니다. 경험을 통해 다양한 강아지의 교집합을 계산해서 그 무언가를 강아지라고 부른다는 것이죠.

■ 뇌가 사랑을 느낀다는 것은
신호를 해석한 결과일 뿐


중세 후기에 아벨라르라는 철학자가 있습니다. 아벨라르는 자신이 가르치던 엘로이즈라는 어린 여학생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아이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엘로이즈를 키운 삼촌의 반대로 둘 사이는 찢어지게 됩니다. 낙담한 아벨라르는 수도사가 되고, 엘로이즈 역시 수녀가 됩니다. 20세기 중반에 이분들이 수도사와 수녀가 되어서도 연애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존 말코비치 되기>라는 영화 초반에 주인공이 인형놀이를 하는데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사랑 얘기죠. 영화는 우리가 인형을 갖고 놀듯이 우리를 갖고 노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의 행동을 제어하는 것은 뇌입니다. 뇌를 봤을 때 정말 신기한 것은 신기한 게 전혀 없다는 그 자체입니다. 그저 1.5㎏짜리 고깃덩어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가지고 우주와 별에 대해, 뇌 자체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겁니다. 뇌를 해부해 보면 유일하게 발견할 수 있는 건 10의 11승(1000억)개의 신경세포입니다. 또 세포 하나하나는 수천 또는 수만의 다른 세포와 연결돼 있어 10의 15승(1000조)에 해당하는 연결성을 갖고 있죠.

뇌는 사실 세상을 하나도 모릅니다. 눈·코·귀 같은 오감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뇌가 해석하는 겁니다. 뇌는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다양한 현상을 왜곡합니다. 예를 들면 망막에는 맹점이 있는데 그대로라면 우리 시야에는 사과 크기만 한 블랙홀이 보여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맹점이라는 걸 알고 있는 뇌는 주변 정보를 복사해 와서 그 부분을 메워버리기 때문에 볼 수 없는 거죠. 우리는 해석된 세상을 보는 겁니다. 듣는다는 것, 느낀다는 것도 해석하는 겁니다. 뇌가 사랑을 느낀다는 것도 직접·객관적인 무엇으로 느낀다기보다 뇌가 신호를 해석한 결과라고 할 수 있죠.

■ 뇌는 과거·현재·미래 싸움터
사랑도 최소한 3가지가 존재


우리의 뇌는 양파 같은 구조입니다. 뇌는 컴퓨터가 아니라 ‘컴퓨터들’입니다. 뇌를 크게 3가지 컴퓨터라고 보면 가장 깊고 오래된 곳에 있는 신경회로망은 도마뱀도 가진 신경회로망으로, 현재 위주로 판단합니다. 지금 이 순간 먹이가 있으면 먹고, 지금 이 순간 무서운 게 있으면 도망갑니다. 시간의 개념이 없습니다. 그러다 진화를 거쳐 기억할 수 있는 신경회로망을 갖게 되고, 과거의 기억에 토대해 비슷한 나쁜 상황은 피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 뇌 피질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뇌는 미래를 위주로 판단합니다. 뇌 안에는 세 가지 회로망들이 그대로 살아있는데, 우리 몸은 하나입니다. 행동은 하나만 할 수 있지요. 그러니 셋이 싸우기 시작합니다. 대부분은 미래가 이깁니다. 가장 최신 기계이다 보니 아래에 있는 녀석들을 컨트롤하는 거죠. 단, 뇌가 엄청나게 바쁘거나 다른 일을 할 때는 밑에 있는 녀석들이 툭툭 튀어나오죠. 예를 들어 아주 이성적인 분들도, 운전할 때 보면 다릅니다. 운전할 때 뇌 피질에는 많은 부하가 걸립니다. 처리 용량이 꽉 찬 상태에서 다른 차가 끼어들면 자동으로 욕이 나오죠.

사랑 역시 그냥 동물적인, 번식하겠다는 현재의 사랑이 있겠죠. 저걸 했더니 좋더라, 과거의 사랑도 있겠죠. 앞으로 이런 인생을 살겠구나, 미래의 사랑도 있겠죠. 적어도 3가지 사랑이 존재하는 겁니다.

지난 16일 경향신문 ‘심리톡톡-사랑에 관하여’ 강연에 참석한 독자들이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지난 16일 경향신문 ‘심리톡톡-사랑에 관하여’ 강연에 참석한 독자들이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페이스북 ‘좋아요’처럼
인간사회는 ‘공감 유닛’ 나눠


옥스퍼드대의 로빈 던바 교수가 영장류 그룹의 크기를 측정해 봤더니 뇌가 작으면 작을수록 그룹이 작았습니다. 뇌가 작은 어떤 원숭이 종은 5~6마리가 같이 다니는데, 침팬지는 70~80마리의 그룹을 짓습니다. 인간의 뇌 사이즈를 대입하면 140명 정도가 나옵니다. 실제 아마존의 원주민 마을을 보면 그룹 멤버가 100~120명 넘으면 쪼개진다고 해요. 기업도 100명 이상이면 분열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회적 동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회계’입니다. 같은 무리 중에 누가 좋은 일을 해주고 나쁜 일을 하는가를 계산해야 하는 거죠. 문제는 뇌가 작은 녀석들은 일정 수가 넘으면 얼굴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영장류인 고릴라나 침팬지는 하루의 대부분을 서로 이 잡아주는 걸로 보냅니다. 사실 이는 1~2시간만 잡으면 끝나요. 나머지는 시늉만 한다고 합니다. 매번 바나나를 주고받을 수 없으니 ‘이 잡는 행동’이 서로에 대한 우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화폐’ 역할을 하는 겁니다. 내가 5번 잡아줬는데, 상대방도 5번 잡아주면 친구입니다. 내가 10번 해줬는데 3번밖에 안 해주면 나쁜 애입니다. 내 보스라면 내가 10번 해줄 때 1번밖에 안 해줘도 괜찮습니다. 인간 사회에서 우리는 대신 ‘공감 유닛’을 서로 나눕니다. 얘기 들어주고 고개 끄덕이는 게 이 잡아주는 행동과 같다는 거죠. 페이스북이 인기 있는 것도 ‘좋아요’ 버튼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어떨까요. 양가의 할아버지, 할머니 중에 가장 많은 사랑을 베푼 분을 굳이 뽑으라고 하면 대부분은 외할머니를 뽑습니다. 손자·손녀한테 투자하는 시간을 실제 측정해 순위를 매겨 봐도 외할머니가 가장 높습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사실 사랑은 존재하지 않으며, 내가 자식들에게 잘해주는 이유는 내 유전자의 50%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아빠와 엄마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엄마의 경우 자식이 자신의 유전자 절반을 가질 확률이 100%입니다. 직접 낳았으니까요. 아빠는 사실 100% 확신할 수는 없죠. 그렇게 보면 엄마의 엄마(외할머니)가 상황이 가장 좋습니다. 계산적으로만 사랑하셨다는 얘기가 아니라 우리의 본능이 하늘에서 떨어진 건 아니라는 겁니다.

▲ 30년 내 인공지능 출현
영화 속 로봇 애인 불가능한 것 아니다


우리는 기계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영화 <A.I.>에서 여성을 만족시켜주는 섹스 로봇 ‘지골로 조’는 이렇게 말한다. “로봇 애인을 경험하면 다시는 인간 남자친구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어질 거야.” 뇌과학자인 김대식 교수는 지골로 조의 말이 충분히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선 사랑에 빠지려면 기계가 영화 <그녀>에 나오는 운영체제 사만다 수준의 인공지능을 갖춰야 한다. 현재 뇌과학에서는 우리 머릿속의 10%만을 언어로 표현하는 게 가능하다고 본다. 세 살짜리 어린아이도 쉽게 구분하는 강아지와 고양이조차 언어로 명확히 구분짓기는 쉽지 않다. 기호체계로 세상을 완벽히 표현할 수 없기에 기계에 인간의 능력을 학습시키기는 불가능하다는 게 그간의 중론이었다.

최근 1~2년 사이 상황이 급변했다. 강아지란 무엇인가를 설명해주는 방식이 아니라 아주 많은 강아지의 사례를 기계에 집어넣어서 스스로 학습하고 해석하게 하는 방법을 뜻하는 ‘딥 러닝’이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7월 마이크로소프트는 강아지를 알아보는 시스템을 선보이기도 했다. 상황을 해석하거나 동시통역까지 해내는 시스템도 나오고 있다.

김 교수는 “30년 안에 인공지능 출현이 예상된다”고 했다. 이미 일본의 한 양로원에서는 자식들 대신 대화를 나눠주는 기계가 사용되고 있다. 사랑을 느끼고 친구를 가지고 싶어 하는 인간의 속성상 누군가 ‘공감’을 더 잘해준다면 비록 착시라고 치부할지라도 ‘기계와의 사랑’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김 교수는 “강한 인공지능이 출현하는 날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약한 인공지능이란 사람과 비슷한 정도로 정보를 처리하고 이해하는 컴퓨터를 뜻하는데 여기에 자유의지와 정신이 더해지면 ‘강한 인공지능’이 된다. 인간이 프로그래밍할 수 없거나 하지 않는다 해도 기계가 스스로 학습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강한 인공지능은 인간을 지구상에서 필요 없는 존재로 인식할지도 모른다. 옥스퍼드대에서 강한 인공지능이 출현하게 되는 수십 가지의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한 결과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인류 멸망’이란 결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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