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톡톡’ 시즌2 - 사랑에 관하여](8) 박혜란 “욕심 채우려고 하면 외로워져, 행복하려면 먼저 베풀어야”
최민영·송윤경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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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여성학자 박혜란의 ‘덜 외롭게 살기’

경향신문 2015년 연중기획 ‘심리톡톡 - 사랑에 관하여’ 8월 강연은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이사장이자 여성학자인 박혜란씨가 강사로 나서 ‘덜 외롭게 사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자신의 생애주기를 토대로 한 에세이 <여자와 남자> <결혼해도 괜찮아>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그는 “외롭지 않게 살기 위해서는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나를 안 외롭게 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녀는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배우자와의 사랑은 계속 가꾸어야 하는 것이며, 노년기에는 남아 있는 사랑을 자녀에게 나눠주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고 경험에서 나온 지혜를 말했다. 이전 세대가 이루지 못한 ‘공동체’를 젊은 세대가 이뤄 사랑을 베풀었으면 한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지난 26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여적향에서 진행된 강연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박혜란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이사장이 지난 26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 여적향에서 열린 ‘심리톡톡-사랑에 관하여’에서 생애주기별로 덜 외롭게 사는 방법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박혜란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이사장이 지난 26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 여적향에서 열린 ‘심리톡톡-사랑에 관하여’에서 생애주기별로 덜 외롭게 사는 방법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생애주기와 ‘사랑’

고백을 하자면, 저는 형제 많은 가난한 집에서 부대껴서 아이가 싫었어요. 결혼하면서도 걱정했어요. 애를 낳았는데 애가 싫으면 어쩌나. 그런데 태어난 아기와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지더라고요. 이렇게 예쁜 아이가 나한테 와줬구나 싶어서 너무 고마웠어요. 선물 같은 세 아이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했지요.

전업주부 생활 10년 하고 막내가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갔을 때였어요. “아이들은 이제 다 키웠으니, 이제는 내가 커야겠다”고 선언하고는 아이 목에 아파트 열쇠를 걸어주고 세상에 나왔어요. 그러면서 눈이 확 트이기 시작했어요. 여성으로서 예쁜 척도 하고 애교도 부리고 애도 셋이나 낳고 살았는데, 내가 알던 객관적·중립적 가치관이 실상 남성중심적 가치관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지요. 저는 제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해 새 패러다임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어요. 그 경험이 신기해서 글을 쓰고 다른 이들에게 말하다보니 여성운동가가 됐어요. 제가 여성학을 한 지 30년이 넘었네요. 책도 쉰 살이 다 돼서 쓰기 시작해서 지금껏 9권을 냈어요. 주제는 멋지다기보다는 살면서 경험하고 생각하는 것들이에요. 일상의 연애, 육아, 주부로서의 삶 같은 이야기들입니다.

한국 여성들은 결혼 전에는 굉장히 똑똑해요. 불의에 대한 감각도 매우 올바르고 촌지나 사교육이 아이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요. 그런데 주부가 돼서 아이를 낳고 키우면 이 여성들이 ‘바보’가 돼요. 남성은 사회적 업적으로 존재가치가 평가되는 반면 여성은 아이의 성공 여부로 존재가치가 재단되는 사회풍토 때문이지요. 저는 아이는 독립된 인격체이고 부모 뜻대로 안되니 좌절하지 말라고 주장했어요. 사람들은 현실은 다르다고 얘기했고요. 그러다 과외도 안 시켰던 제 아들이 유명대에 합격하자 갑자기 제가 선견지명이 있는 엄마 대접을 받았어요. 기회는 바로 이때다 싶어서 교육운동을 시작했지요. 하지만 ‘이적 엄마 박혜란’으로 소개될 땐 씁쓸해요. 왜 나를 그 자체로 안 보고 누구 엄마라고 할까 싶어요.

제가 하는 교육 이야기는 ‘서울대 보내는 노하우’가 아니에요.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자기가 가진 재능으로 밥을 먹을 수 있는가’를 성공의 기준으로 보거든요. 외형적으로 ‘사’자 붙은 직업을 얻거나 큰돈을 벌면 행복하다고 평가하는 이도 있겠지만 저는 아니거든요. 보통 부모들은 아이가 내 마음에 들 때 사랑해요. 말을 잘 듣거나 공부를 잘할 때 말이죠. 아이를 무조건 사랑하면 아이들이 잘못될 일도, 자신감 잃을 일도 없어요. 공부를 못하더라도 적성의 문제이지 인생이 실패하는 건 아니죠. ‘왕따’ 당하더라도 부모에게 절대적 사랑을 받은 자녀는 좀처럼 좌절하지 않아요.

50대가 되어서 병원 검진에서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라는 결과를 받고는 나이듦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세상은 젊음을 예찬하다 못해 나이 들어가는 것을 부인하지요. 무조건 젊어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잖아요. 최고의 칭찬이 ‘동안이십니다’니까요. 미디어에는 매우 젊고 예쁜 사람들만 넘쳐나요. <신데렐라> 같은 동화에도 예쁜 여자는 마음씨가 곱다는 공식이 성립하다보니 여자들은 나이가 50이 돼도 자신을 신데렐라와 동일시하지 그의 계모와 동일시하지 않아요.

그러다 우리 남편이 50대 중반 무렵 사업에 실패해 집에만 있게 됐을 때에는 나이 들어서 같이 살 때 부딪칠 수밖에 없는 남녀의 차이에 대해 생각했어요. 사랑이라는 것이 계속 가꾸지 않으면 풀도 나고 함정도 생기고 그러는구나 싶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요. 젊었을 때부터 사랑을 쌓아왔으니 노년에는 가장 풍성한 사랑을 나누겠거니 해요. 절대 아니에요. 정말 노력을 많이 한 사람만이 가능해요. 늙어서 사이좋게 사는 비결은 측은지심이에요. 사람에 대한 사랑이자 배려랍니다. 노년기의 청중에게 강의를 할 때에는 여태까지 살아온 인생을 사랑하고, 앞으로 남은 인생을 내 것으로 사랑하라고 말씀드립니다. 자식이 당신을 사랑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당신이 남아 있는 그 사랑을 자식한테 나눈다는 생각으로 사시라고요.

제가 그간 관심을 두었던 주제를 정리해보니, 사람의 일생을 한 번 다 뒤적거렸구나 싶네요. 저는 그간 썼던 책에서 ‘이렇게 하라’라고 말을 못했어요. 인생에서 ‘이거다’라는 게 없다는 게 제 인생관이에요. 아이들 역시 제가 인생에 자신이 없어서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은 덕에 잘 자랄 수 있었다고 봅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박사 되고, 판사 되고, 돈 많이 벌고, 이게 행복한 거다라고 말을 못하겠더군요. 그게 행복이란 확신이 저는 없었어요. 행복은 주관적인 것이어서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 일을 사랑하고, 내 인생을 사랑하면 된다는 것을 사람들도 내심 알아요. 그런데 행복의 평가잣대를 얘기할 때는 재력·출세·지위 같은 것들을 무책임하게 얘기해요. 저는 부모들이 자식한테 정직했으면 좋겠어요. 단지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자식보다 행복에 대해 뭘 더 알겠어요.

100세 시대의 외로움

글을 쓰면 자신을 사랑하게 됩니다. 누군가 너무 미울 때에는 꽁하지 말고 그 사람과 나 사이의 관계를 글로 풀어보세요. 어느 순간 해결이 되면서 치유를 얻어요. 내 안의 사랑이 점점 늘어나는 거예요. 소셜미디어에 험담하지 마세요. 그럴수록 자기 자신이 상처받아요. 제가 처음 낸 책도 출판 목적으로 원고를 쓴 게 아니었습니다. 여성주의에 대해 써놨던 글들이 쌓이자 주위에서 책으로 내라고 권했어요. 나무들에게 죄짓는 일 같아서 처음에는 꺼렸지만 다행히 반응이 좋았어요. 그렇게 외로움을 다스리는 거지요.

제가 25살에는 60살이 되면 생의 끝이겠거니, 인격적으로 성숙하겠거니 생각했어요. 살아보니 아니더군요. 60살이 돼도 나는 여전히 미성숙하고 겪어보지 않은 게 너무 많고 내 인생에 스스로 만족하지 않았어요. 평균 예상수명이 100세로 늘어날 정도로 대한민국은 장수국가가 되고 있어요. 현재의 70~80대는 준비도 없이 노년을 맞았지요. 집 한 칸은 가지고 있지만 성인병도 많고 술 많이 마셔서 건강도 나빠요. 국가와 자녀에게 부양을 기대할 수도 없어요. 그래서 노인 자살률이 세계 1위예요. 전통적인 가족관계가 개인주의로 깨지고 남은 생을 생각하면 살아갈 자신이 없는 거지요.

그 인생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요. 저는 노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고, 그걸 만들어낼 수 있는 동력은 사랑이라고 봐요. 그 사랑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에요. 어릴 때부터 사랑하는 능력을 키워가야 합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 이성에 대한 사랑, 친구에 대한 사랑, 거기다 이웃에 대한 사랑까지 말이죠. 이 사랑을 이어가려면 아프면 안되고 돈도 너무 없으면 안돼요. 돈이 너무 많아도 자식들끼리 싸워요. 옆에 끝까지 나랑 길동무가 될 사람도 있어야 해요. 그게 남편이면 좋지만, 자식은 길동무로 만들 생각 하면 안돼요. 자식은 딴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내 것이 아니라 내 손님이에요. 자식과의 사랑도 ‘밀당’이에요. 아이에게 나는 부모로서 나 자신보다 너를 더 사랑했다, 내 삶의 보람은 너다, 너네 아빠와 이혼 안 한 것도 너 때문이다, 이러지 마세요. 애들한테 왜 자기 인생을 얹어요.

개인의 욕망만 충족시키려고 하면 사람이 외로워져요.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이유가 있어요. 내가 나를 외롭게 하는 거예요. 타인은 나를 외롭게 할 만큼 영향력이 없어요. 결국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건 나잖아요. 내가 나를 외롭게 안 하기 위해서라도 따지지 말고 친구한테 잘해야 되는 거예요. 내가 점심 세 번 샀는데 쟤가 한 번 샀다, 이런 식으로 따지지 마세요. 삶은 살수록 재밌어요. 사람이 사랑하는 방법을 점점 익혀가고, 대상이 점점 넓어지는 거니까요.

그래서 저는 공동체 개념이 곳곳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날 것이라고 봅니다. 그건 젊은 세대인 여러분께서 할 일이에요. 산업화의 폐해도 여러분들 다 보셨잖아요. 사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덜 외롭게 살기 위해서라도, 정말 무조건적인 사랑을 내가 먼저 베풀어야 합니다. 그게 내가 행복해지는 길이에요.

가족 간의 사랑, 기대 수준 낮추고 쿨하게 대해야
요즘 젊은 세대 공동체 인식 강해 사랑의 범위도 넓어지고 있어


이날 강연에서 한 30대 청중이 질문했다. “아무리 스스로를 사랑하고 일을 사랑해도, 가족이 없으면 행복하지 못한 것 아닌가요.”

박혜란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이사장은 유전자를 나눈 혈연관계 입장의 가족은 좋을 때는 대체 불가능한 관계지만, 나쁠 때는 그만한 악몽도 없다고 대답했다. “남이 안 보면 갖다 버리고 싶은 ‘질병 같은 존재’로 불행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대에 어긋나면 원망도 커진다. 가족 간 폭력도 요즘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가족 간의 사랑은 ‘쿨’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상대방에 대한 기대 수준을 낮추고 적당한 거리를 인정하는 것이 좋다.

그는 대신 젊은 세대에서는 가족을 넘어 공동체로 사랑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먹고사는 데 바빠서 ‘가족’ 중심으로 협소했던 관심과 애정의 범위가 새로운 세대에서는 이웃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굉장히 개인주의적인 면이 있지만, 동시에 공동체적인 인식이 강하다”고 보는 그는 전반적으로 다른 시민 구성원에 대한 예의의 수준이 과거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평가했다. “대중교통에서 운전사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은 과거에는 보기 어려운 것 아니었느냐”고 했다. ‘여성학자 박혜란’은 의심 없이 낙관하고, 기꺼이 믿어주는 태도의 소유자였다.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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