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톡톡’ 시즌2 - 사랑에 관하여] (12) 서동진 교수의 ‘그럼에도, 사랑을 부르는 이유’
황경상·김한솔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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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사랑은 어제와 다른 세상에 살게 해주는 ‘혁명’과 같은 것”

‘혁명’을 말하는 것이 우스꽝스러워진 만큼이나 ‘사랑’을 말하는 것도 진부해진 시대. 사랑은 어떻게 다시 ‘새 옷’을 입고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을까. 경향신문 연중기획 ‘심리톡톡-사랑에 관하여’ 12월 강연은 서동진 계원예술대 교수가 ‘그럼에도, 사랑을 부르는 이유’라는 주제로 진행했다. 지난 14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강연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혁명과 짝을 이루고 있는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은 놀라울 정도로 닮았습니다. 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은 뭘까요? “더 이상 어제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는 거지요. 그럼 삶의 차원에서 “나는 더 이상 어제와 같은 내가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요. 사랑에 빠진 다음 날, 우리는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사랑은 음식을 먹고 난 뒤 쾌적한 기분에 빠지듯, 그저 욕망 가운데 하나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에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라며 혁명이 조롱을 당하는 것 못지않게 사랑이 형편없는 대접을 받는 건 중요한 징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즐거운 쾌락을 위한 사랑의 담론을 넘어, 사랑이 하나의 계기이자 실천이라고 본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3편의 영화를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서동진 계원예술대 교수가 지난 14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그럼에도, 사랑을 부르는 이유’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그는 “사랑을 통해서 우리는 나 자신이 누구인가,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알게 되고 변화를 체험한다”고 말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서동진 계원예술대 교수가 지난 14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그럼에도, 사랑을 부르는 이유’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그는 “사랑을 통해서 우리는 나 자신이 누구인가,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알게 되고 변화를 체험한다”고 말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사랑한다는 선언을 받았을 때사랑을 수락한 순간, 변화가 일어나죠당신은 너무나도 소중하고 훌륭한 사람이었기에이제 훌륭해져야 하는 겁니다“



■ 사랑은 선언으로부터 온다

먼저 <파이란>입니다. 주인공인 강재는 ‘조폭’인데 “오늘도 호구고 내일도 호구고 국가대표 호구”라고 불리지요. 아주 보잘것없고 비굴한 역할입니다. 강재는 중국에서 돈 벌러 온 한 여성과 위장결혼을 하는데 세월이 흐른 뒤 그녀의 사망통지서를 받습니다. 그는 여성이 남긴 편지를 보게 됩니다. “세상 어느 누구보다 사랑하는…, 강재씨 안녕.”

영화 <파이란>

영화 <파이란>


그러고 나서 우리는 놀라운 순간에 직면하게 됩니다. 곤경에 처한 두목이 자기 대신 감옥에 들어가 달라고 강재에게 요구하는데, 거절하면 필시 죽을 거란 걸 알면서도 강재는 거절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신은 누구보다 사랑의 존재였다는 편지가 전해지고, 그 사랑의 고백 때문에 사천만의 호구였던 강재는 어제의 강재가 될 수 없습니다. 강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사랑한다는 선언이 전해지면 너무 느닷없어서, 당혹스러워서 나의 어떤 점이 사랑받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연애 10년차인데도 ‘사랑해’라고 말하면 ‘왜’냐고 뻔질나게 묻습니다.

사랑은 사실적 상태로 환원할 수 없습니다. ‘탁자 위에 고양이가 있다’라는 말은 고양이가 있으면 참, 없으면 거짓입니다. 사랑은 어느 정도 돼야 사랑일까요? 사랑은 선언과 함께 시작됩니다. 선언은 진위를 가릴 수 있는 문장과 달리 수행문이라고 부릅니다.

‘당신에게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언도합니다’ 같은 말입니다. 판사가 판결을 내리는 순간 죄인이 되는, 선언과 더불어서 어떤 효과를 내는 말입니다. 강재가 사랑한다는 선언을 받았을 때, 변화가 일어납니다. 어제의 내가 될 수 없는 겁니다. 사랑을 수락한 순간, 당신은 너무나 소중하고 훌륭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훌륭해져야 하는 겁니다.

과학자들은 사랑이 생리화학적 반응의 일종이라고 합니다. 언젠가 우리는 사랑의 묘약 같은 당의정을 먹고 사랑에 빠질 수는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강재처럼 죽음을 택할 순 없습니다. 강재는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 이유는 없다, 원인만 있다

사랑은 오직 두 가지의 시간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길고 짧음과 무관하게 무효가 되어버리는 시간, 아니면 영원이란 이름으로 존재하는 시간이지요. 다음에 함께 나눌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교훈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시골 마을을 방문한 사진기자 로버트는 혼자 집에 있는 주부 프란체스카를 만나 짧은 사랑을 나누고 헤어집니다. 바로 그날 사랑에 빠졌고 죽을 때까지 사랑을 유지했다는 겁니다.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그걸 사랑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사랑에 빠졌다고 착각하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에 빠졌을 때 그것이 사랑인지, 사랑한다는 타인의 고백이 진짜인지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 어떤 이유로도 설명할 수 있지만, 어떤 이유로도 설명될 수 없습니다.

원인과 이유의 차이를 통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어느 날 직장 생활을 하는 엄마가 갑자기 사랑하는 아이가 차에 치여서 죽었다는 전화를 받습니다. 왜 죽었을까요? 교통사고를 당해서, 차가 가진 물리적 힘에 의해 죽었다고 하면 엄마는 납득할까요? 여러분 모두 아니라고 할 겁니다. 그게 바로 ‘이유’라는 겁니다. 그 엄마는 ‘직장 다니지 말고 애를 더 돌봤다면’ 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에게 벌어진 끔찍한 일에 관한 비밀을 풀고 싶어 할 겁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탑승객들이 왜 죽었습니까? 배가 가라앉아 죽은 거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 터무니없는 참사를 불러일으킨 진정한 ‘원인’을 찾고 싶어 합니다.

프란체스카의 사랑이 어떻게 진정한 사랑인지 알 수 있나요?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영화는 상상에 맡깁니다. 온갖 추잡한 상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뭔가 안에서 다른 차원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변화는 사실적 상태로 환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원인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는 그걸 사랑이라고 인정하고, 그걸 지키려고 결심한 겁니다. 이유는 없습니다, 원인은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에 빠진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매력적인 모습, 목소리, 태도, 몸매, 헌신 등 많은 것을 열거할 수 있지요. 그것은 단지 이유의 차원에 머뭅니다. 절대 사랑에 빠진 원인을 밝혀줄 수 없습니다.

■ 불가능한 소통 속의 사랑

마지막은 <아무르>라는 영화입니다. 노부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내 안느는 설거지를 하려다가 마비 증상을 발견합니다. 남편인 조르주는 곁에서 투병을 돕지만 아내의 병은 점점 깊어져 갑니다. 심지어는 대소변도 구분하지 못합니다. 가끔 정신이 들었을 때 아내는 남편에게 죽여 달라고 간청합니다.

사랑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윤리적 가치와 반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가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이해를 구하는 ‘소통’입니다. 그러나 존중받을 만한 타자는 ‘나를 닮은’ 타자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나에게 이미 길들여져 있는, 내 욕망의 소비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만이 타자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테러리스트, 악마다 이런 거지요. 인류학자들의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인류학자가 어느 원시부족 사회로 갔더니 모두들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휴대전화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습니다. 다가가자 깜짝 놀라 휴대전화를 숨기고 원시적인 춤을 춘다는 겁니다. 서구인들의 타자가 되기 위해 연기를 하는 겁니다.

영화 <아무르>

영화 <아무르>


사랑에 대한 판타지 중 하나는 사랑이 두 사람의 완전합일이라 생각하는 겁니다. <아무르>도 아내의 요구를 들어주고 같이 죽음으로써 죽음 속에서 완전한 하나가 됐다고 보실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죽음에 대한 욕망은 받아들일 수도 없고 소통할 수도 없습니다. 평생을 같이 산, 잘 알고 있는 내 아내가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요구하는, 감당하기 어려운 타자가 된 아내도 있습니다. 그 아내를 이해하려고 하는 겁니다.

영화는 라는 책을 남긴 앙드레 고르의 실제 일화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아내가 오랜 투병 끝에 죽은 다음 고르는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기 시작합니다. 완성한 뒤 자살하지요. 편지에는 아내가 무엇을 원했을까에 대한 끝없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기억 속에 남은 둘의 사랑을 써내는 게 아닙니다. 그녀가 내가 생각하는 사람과 얼마나 다른 사람이었는지를 상기하고 기억하려는 몸짓입니다. 사랑은 하나 되기가 아니라 둘 되기를 실행하는 윤리적인 선택입니다.



■ 혁명보다 사랑이 중요하다



혁명을 일으키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은 같은 질문에 봉착해 있는 사람입니다.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은 우습게 돼 있지만, 그래도 사랑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사람은 아직도 있습니다. 혁명은 역사의 순간에서 우연히 주어질 따름입니다. 사랑은 우리 삶 속에서 끊임없이 주어지는 과제입니다. 사랑을 통해 우리는 누구인가,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알게 되고 변화를 체험합니다. 사랑은 어떤 윤리적 공간입니다.

혁명은 위기에 몰려도 괜찮지만 사랑이 빈사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입니다. 사랑은 과학이자 소비해야 할 무엇이 돼 있습니다. 코치를 받고 기술이 필요한, 숙련돼야 하는 것처럼 얘기됩니다. 사랑을 분석하고 통제할 수 있는 대상으로 불러들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세 편의 영화로 결코 사랑이 사실의 세계로 정박할 수는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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