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잼잼] (4) ‘한 땀 한 땀’ 엮은 나만의 책…아날로그 감성에 취하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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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북 바인딩

스마트폰에서 인터넷 창을 열고 터치를 몇 번 하면 택배상자에 고이 담긴 책이 집으로 날아온다. 그나마 책을 직접 사거나 읽는 일도 많이 줄었다. 사람들은 진짜 책 대신 책 내용을 소개한 글을 인터넷으로 더 많이 읽는다. 손가락은 스마트폰의 매끄러운 액정화면을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사각거리는 종이의 질감을 손끝으로 느끼면서 책을 읽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서울 서교동 상상마당에서 18일 열린 경향신문 연중기획 취미잼잼 4번째 ‘북바인딩’ 교실에서는 종이와 실로 직접 책을 만들어봤다. 참가자가 반듯이 접은 종이에 실을 꿰기 위한 구멍을 송곳으로 조심스레 뚫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서울 서교동 상상마당에서 18일 열린 경향신문 연중기획 취미잼잼 4번째 ‘북바인딩’ 교실에서는 종이와 실로 직접 책을 만들어봤다. 참가자가 반듯이 접은 종이에 실을 꿰기 위한 구멍을 송곳으로 조심스레 뚫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이런 시대에 종이를 직접 자르고 구멍을 뚫고 실로 꿰는 ‘번거로운’ 작업을 굳이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손으로 책을 짓는’ 북바인딩.

서점에서 만나는 책들은 한결같이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표지는 형형색색 화려하게 다른 얼굴을 하고 매끈하게 잘 빠졌지만 사실 비슷한 제본에 비슷한 외관이다. 이를테면 ‘성형미인’이랄까. 손으로 직접 만든 책은 조금 비뚤고 엉성하지만 나의 노동이 직접 들어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책이라는 특별함이 있다. 책을 제본하는 방법도, 책의 크기도, 책을 구성하는 방법도 규격화되어 있지 않다.

경향신문 취미잼잼 네 번째 시간에는 손으로 직접 책을 만드는 ‘북바인딩’을 배웠다. 손으로 직접 만든 책을 제작·판매하는 독립출판물팀 ‘하우위아’에서 강의를 진행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북바인딩을 배우기 위해 찾아왔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김은서씨는 “북바인딩을 아이들이랑 수업할 때 유익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배우러 왔다”고 말했다. 전현숙씨는 “아들들이 다 장가를 갔는데, 예전에 아들들이 써놓은 일기, 군대에서 나한테 보낸 편지가 꽤 있다. 그런 걸 묶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찍는 일을 하는 최형락씨는 “인화지를 모아서 묶어봐도 좋을 것 같아 찾아왔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취미잼잼 ‘북바인딩’ 강의 참가자가 종이를 실로 정성껏 엮고 있다.  강윤중 기자

경향신문 취미잼잼 ‘북바인딩’ 강의 참가자가 종이를 실로 정성껏 엮고 있다. 강윤중 기자


인쇄소에서 찍어내는 책의 제본 방식을 일컬어 ‘떡제본’이라고 한다. 종이를 풀로 붙이고 책등으로 가려서 책을 만드는 방식이다. 하우위아 임소라 대표는 “처음 만든 책을 인쇄소에서 찍었는데 ‘떡제본’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직접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핸드 바인딩’은 종이를 직접 자르고 실로 꿰어 책을 만든다. 만들고자 하는 콘텐츠의 종류, 종이의 종류나 질감·양에 따라 ‘맞춤형 제작’이 가능하다. 그림을 그릴 목적으로 만드는 노트라면 도톰한 종이가 적합하고, 연필이나 샤프로 메모할 목적으로 만드는 것이라면 얇은 종이가 적합하다. 바인딩 방식 역시 다양해서 책의 두께에 따라 싱글섹션 바인딩, 재패니즈 바인딩, 코덱스 바인딩 등 다양한 기법이 존재한다.

취미잼잼에서는 ‘초급’이라고 할 수 있는 싱글섹션 바인딩과 재패니즈 바인딩으로 책을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싱글섹션 바인딩은 종이를 반으로 접어 가운데를 실로 꿰는 방식이다.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으로, 얇은 책만 가능하고 하드커버 책에는 부적합하다. 책등에 바느질 땀만 남아 책꽂이에 꽂았을 때 책등이 생기지 않는다. 책상 위에는 종이, 칼, 송곳, 실, 바늘, 자, 커팅매트, 송곳으로 종이를 뚫을 때 필요한 코르크 판 등이 놓였다. 이제 필요한 건 ‘사람의 노동’이다.

처음은 ‘3홀 바인딩’으로 시작했다. 종이를 한 장 한 장 반듯이 접어 나무 폴더로 정성껏 밀어준다. 포개진 종이 가운데를 중심으로 동일한 간격으로 양옆에 송곳으로 표시를 낸다. 그리고 송곳으로 구멍을 뚫는데, 이때 있는 힘껏 퍽 뚫어서는 안된다. 잘 뚫리지도 않을뿐더러 종이가 찢어질 위험이 있다. 접힌 종이를 직각으로 세우고 송곳은 45도 각도로 쥔 뒤 살살 돌려가며 조심스레 뚫는다. 내지는 안에서 바깥으로, 표지는 바깥에서 안쪽으로 뚫어야 한다. 뚫을 때 종이 한 면은 바닥에 대는 게 좋다. 들고 하다가는 종이가 구겨지고 손에서 난 땀이 묻어 얼룩이 질 수 있다.

조용한 강의실에는 사각사각, 직직, 따닥따닥과 같은 경쾌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구멍을 다 뚫었으면 실로 꿰맬 차례다. 실은 일반 실보다 두꺼운 왁싱처리된 실을 쓰는 게 좋다. ‘한 땀 한 땀’ 바늘에 실을 꿰어 구멍을 몇 번 왔다갔다 하니 한 권의 노트가 만들어졌다. 이게 끝이 아니다. 손으로 엮다보니 비뚤비뚤한 책 모서리를 칼로 반듯하게 자르는 작업이 남았다. 자를 잡은 손에만 힘을 주고 칼을 쥔 손은 최대한 힘을 빼 반복해서 부드럽게 잘라야 종이가 밀리거나 씹히지 않고 예쁘게 잘린다. 힘이 좀 드는지 “출판할 때 손으로 하나하나 다 한다고요?”라는 질문이 터져나왔다. “네, 그래서 많이 안 만들어요.” 임소라 대표의 대답이다.

다음은 똑같은 방법으로 ‘5홀 바인딩’으로 책을 엮었다. 구멍을 다섯 개 뚫어 실로 엮는 것. 좀 더 튼튼한 책을 만들 수 있다. 이미 한 번 해본 사람들은 제법 능숙하게 책을 만들어냈다.


5홀 바인딩이 끝나자 ‘재패니즈 바인딩’에 도전했다. 한문이 잔뜩 적힌 옛날 책을 상상하면 되는데, 아시아권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제본 방식이다. 미리 규격에 맞게 잘린 종이를 접지 않고 단면 그대로 책등을 묶는 방식이다. 낱장으로 흩어져 있는 내용을 묶는 데 좋다. 실의 색감이나 간격 등을 조절해 표현할 수 있고 하드커버도 가능하다.

구멍 사이사이와 책등을 실로 엮어주면 되는데 실을 팽팽하게 당겨줘야 책이 견고하고 정돈돼 보인다. 앞서 만든 싱글섹션 바인딩에 비해 좀 더 수고스럽다. 열심히 실을 당겨가며 ‘바느질’을 마치자 고풍스러운 한 권의 책이 탄생했다.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은 원하는 색상의 표지와 실을 선택해 자유롭게 책을 만들었다. 알록달록 다양한 색상의 종이와 실을 고르는 손이 바빠졌다. 무지갯빛 실을 고른 사람, 책 내지 중간중간 색색깔 종이를 끼워넣은 사람 등 다양했다. 책 매듭을 여러 번 지어 장식처럼 드리우기도 했다. 책 중간중간 색지를 끼워넣은 사람은 책이 두꺼워져 “송곳으로 구멍을 뚫기 힘들다”며 웃었는데, 급기야 책을 꿰던 바늘이 부러지고 말았다.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일은 이렇게 다채롭고 정직했다. 규칙이나 정답이 없고, 자유로운 변형과 선택이 가능했다. 들이는 노력과 힘만큼 결과물이 나왔다.

참가자들은 손으로 한 땀 한 땀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디지털 디톡스’를 제대로 한 듯 한결 개운하고 가벼운 표정으로 직접 만든 네 권의 책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