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잼잼] (5) ‘실크스크린’ 에코백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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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마음속 한 줄, 어깨에 메 볼까

경향신문 2016년 연중기획 ‘취미잼잼’의 5월 수업에서는 나만의 그림을 직접 천가방에 실크스크린으로 찍어보았다. 실크스크린은 다양한 무늬를 손으로 찍은 듯한 느낌을 쉽게 살릴 수 있는 데다, 간편하게 여러 벌을 다시 찍어낼 수 있어서 최근 공예의 한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직접 그린 그림과 손글씨를 생활용품 위에 옮기는 데 편리하다. 지난 17일 저녁 서울 합정역 인근 상수동 DB판화공방에서 판화작가 박상아씨가 10명의 경향 독자에게 실크스크린 이론 및 실기를 가르쳤다. 수업이 끝나자 ‘뚝딱’ 나만의 천가방이 생겼다.



실크스크린으로 천가방에 자신만의 그림을 인쇄하는 경향신문 취미잼잼 원데이클래스가 지난 17일 열렸다. 행사에 참여한 독자가 서울 마포구 상수동 DB판화공방에서 자신의 캘리그래피 작품을 인쇄한 종이 위에 도안을 옮겨 그리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실크스크린으로 천가방에 자신만의 그림을 인쇄하는 경향신문 취미잼잼 원데이클래스가 지난 17일 열렸다. 행사에 참여한 독자가 서울 마포구 상수동 DB판화공방에서 자신의 캘리그래피 작품을 인쇄한 종이 위에 도안을 옮겨 그리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모두의 마음에는 ‘찍어보고 싶은 것’ 하나쯤은 담겨있기 마련이다. “저는 이 그림을 오늘 찍을 거예요. 진한 남색으로요.” 김다원 독자가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줬다. 해수면 위로 솟구치는 혹등고래의 모습이었다. 박영수씨는 USB에 자신이 직접 그린 기하학적인 그림을 담아왔다. “내 작품을 아트상품으로 만들어보면 어떨지 궁금해서 공방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캘리그래피를 근사하게 쓰는 김상희씨는 자신의 작품을 가져왔다.

공방을 운영하는 박상아 작가가 작업 테이블에 둘러앉은 참가자들에게 설명했다. “요즘 공예가 트렌드로 뜨면서 실크스크린이 각광받고 있어요. 꽤 오래된 기술이지만 고급브랜드에서 스카프를 인쇄하는 데 아직도 사용하고 있죠. 1930년대 미국에서 관심을 끌다가 1960년대 팝아트와 옵티컬아트가 위세를 떨치면서 스크린 판화기법은 상당한 인기를 끌게 됐어요.”

실크스크린 원데이클래스를 진행한 판화작가 박상아씨(가운데)가 감광기로 판화틀 인쇄를 준비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실크스크린 원데이클래스를 진행한 판화작가 박상아씨(가운데)가 감광기로 판화틀 인쇄를 준비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박 작가가 나무로 만든 사각틀을 들어보였다. “여기 프레임에 씌운 반투명 천에는 작은 구멍들이 뚫려있어요. 이 구멍으로 물감이 통과하면서 판화 프린트가 되는 이치입니다. 처음엔 진짜 명주(실크)로 된 천을 사용했지만 요즘은 폴리에스테르 같은 합성섬유를 사용해요. 비용도 절약하고 재활용도 쉽기 때문이죠. 잉크는 거의 모든 종류를 사용할 수 있어요. 섬유 전용부터 금속 전용까지 말이죠. 면만 평평하다면 밑에 어떤 종류의 재질이 있어도 인쇄하는 게 가능해요. 여러 번 다시 인쇄할 수도 있고요. 공업용 수준의 내구성은 아니지만 그래도 수백 벌은 거뜬하게 찍어낼 수 있어요.”

이날 수업은 ‘1도 인쇄’로 진행됐다. 판 하나, 그리고 색깔 한 가지이다. 초보에게 부담없는 수준이다. 이 경우 윤곽이 선명한 그림이나 글씨가 좋다고 박 작가는 추천했다.

그림을 고른 뒤에는 반투명 재질의 종이에 검은색으로 먼저 인쇄한다. 이 인쇄된 부분으로만 물감이 통과하게 된다.

비결은 바로 감광기 덕분이다. 인쇄한 종이를 먼저 감광기에 올려놓고, 그 위로 광경화 수지를 발라 미리 준비한 프레임을 겹쳐 얹는다. 검은 천으로 처리된 감광기의 뚜껑을 덮은 뒤 약 2분30초 가동시킨다. “가려져 있어서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 감광기는 램프를 통해 자외선을 쏘아냅니다. 자외선을 받으면 프레임에 전처리돼 있던 광경화 수지가 딱딱하게 굳어요. 하지만 검게 인쇄된 그림에 가린 부분은 빛을 받지 못하죠.” 빛을 받으면 굳는 재질의 물질은 요즘 네일아트에서 많이 쓰는 젤네일을 생각하면 된다.

잠시 뒤 감광기의 스위치를 내리고 뚜껑을 들어올렸다. 한 차례 ‘구워져’ 나온 프레임은 들어가기 전보다 푸른 빛이 조금 옅어졌을 뿐 그다지 달라진 게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물을 만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판을 물로 세척하면 굳어지지 못한 수지가 씻겨나가는 것이다. 부드러운 수세미로 꼼꼼하게 판을 닦아내자 뻥 뚫린 그림이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은 꽤 신기했다. 수지로 막힌 부분은 물감이 통과하지 못하고, 뚫린 부분으로만 물감이 지나게 된다.

참가자들은 물세례를 받고 새로 태어난 각자의 판화틀에서 물기를 닦아내고 선풍기 바람으로 자연건조시켰다.

젖은 판이 마르면 그 다음은 본격적인 인쇄에 들어간다. 권총형 스테이플러로 판을 나무상판 작업대에 여닫는 뚜껑처럼 고정시킨 뒤 아래에 인쇄할 재료를 놓는다. 이날은 공방에서 판매하는 5000원짜리 캔버스 천가방을 사용했다. 엽서, 파우치 손수건, 보자기를 비롯해 어떤 재료라도 가능하다.

“천에 인쇄할 수 있는 수성 물감을 사용하면 되거든요. 색깔도 다양하고요. 빨래도 걱정 없어요. 다만 인쇄한 다음에 15분 이상 충분히 말리고, 집에 가져가거든 다림질을 해서 열처리를 한 번 해주세요. 그럼 내구성이 더 좋아져요.”

인쇄할 대상의 표면 질감에 따라 더 촘촘한 실크스크린을 택하기도 한다.

“성긴 경우는 1제곱인치에 구멍이 100개쯤 되고, 촘촘할 경우에는 250개쯤 돼요. 종이에 인쇄할 때는 촘촘해야겠지만, 광목같이 거친 재료에 인쇄할 때는 구멍이 큰 걸 써야겠죠. 안 그러면 인쇄가 뭉개지거든요.”


모든 준비가 완료됐다면 실크스크린 판 위에 물감을 충분히 올린 뒤에 고르게 힘을 주어 주걱을 쓱 움직인다. 물감이 고르게 구멍을 통과하면서 깔끔한 프린트가 완성된다. 베이지색 천가방에 혹등고래가 모습을 드러내자 김다원 독자가 함박미소를 지었다. 종이 위에도 몇 벌을 찍었는데, 나만의 엽서로 쓰기에도 손색이 없었다. 이성일 독자는 존경하는 종교인의 글귀를 직접 캘리그래피로 적어왔는데, 선물용으로 즉석에서 몇 벌을 더 찍었다. 하나 인쇄하는 데 30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인쇄는 재빠르게 해야 한다. 미적거리다가는 물감이 굳어지면서 구멍이 막히기 때문이다. 힘을 너무 주면 물감이 두껍게 넘치고, 너무 약하면 색이 옅게 나온다. ‘중용’의 미덕이 필요하다.

2시간30분 수업에서 정작 인쇄에 걸린 시간은 5분 남짓이었다. “틀을 만들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리는데 인쇄하는 건 순식간이죠?” 박상아 작가가 말했다. 그것이 실크스크린 인쇄의 매력인 듯했다.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쓱 물감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선명하고 완벽한 형태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 한 번만 찍기 아쉬운 프레임을 남기고 원데이클래스는 끝났다. 프레임은 광경화 수지를 다시 발라 재활용된다고 하니 다음에 또 찾아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