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잼잼] (9) 비뚤비뚤하면 어때…내가 새긴 이름 ‘꾹’, 너는 모르는 이 맛!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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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나만의 도장 만들기

지난 20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취미잼잼 - 나만의 도장 만들기’ 참가자들이 직접 새겨서 완성한 도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쉽지 않은 작업 과정을 거치는 동안 ‘생각한 만큼 잘 나올까’ 의심이 들었지만 예상보다 예쁜 모양의 결과물을 마주할 수 있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지난 20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취미잼잼 - 나만의 도장 만들기’ 참가자들이 직접 새겨서 완성한 도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쉽지 않은 작업 과정을 거치는 동안 ‘생각한 만큼 잘 나올까’ 의심이 들었지만 예상보다 예쁜 모양의 결과물을 마주할 수 있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도장을 파는 일은 엄숙하게 느껴진다. ‘나’를 대표하는 물건을 만든다는 무게감 때문일까? 손가락 한 마디도 안 되는 작은 넓이에 무언가를 새겨 넣는 노동의 까다로움과 지난함이 풍겨서일까? 도장을 떠올리면 작고 낡은 공방 구석에서 돋보기안경을 쓰고 쪼그리고 앉아 집중하고 있는 연세 지긋한 노인이 연상된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인터넷에서는 다양한 디자인의 수제 도장을 손쉽게 주문할 수 있다. 개성을 담은 글씨에 하트나 꽃 모양을 함께 그려 넣기도 한다. 도장 측면도 색색의 무늬와 의미 있는 문구를 넣어 장식한다. 커플 도장이나 가족 도장도 있다. 도장 없이 서명만으로 은행 거래가 가능하고, 디지털 공인인증서를 더 많이 쓰는 요즘에도 아날로그 시대의 도장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아직은 많다. 경향신문 연중기획 ‘취미잼잼-올해는 취미를 갖자’ 9월 주제는 ‘도장 만들기’다. 지난 20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수업에서 참가자들은 라미클래스 한보람 원장의 지도로 자신만의 도장을 직접 새겨 보는 시간을 가졌다.

‘살살’ 이름쓰기 연습 후

‘살살’ 이름쓰기 연습 후


‘살짝’ 돌에 눌러쓴 다음

‘살짝’ 돌에 눌러쓴 다음


‘부들부들’ 파내고

‘부들부들’ 파내고


‘쓱싹쓱싹’ 문지르면

‘쓱싹쓱싹’ 문지르면


드디어 완성!

드디어 완성!


‘서예’ 하면 붓글씨만을 떠올리지만, 도장을 새기는 ‘전각’도 서예의 범주에 포함된다. 한자의 글씨체 중 ‘전서체’로 많이 새기기 때문에 ‘전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강의를 진행한 한 원장 역시 9살 때부터 서예 공부를 시작했고 대학에서도 서예를 전공했다고 한다.

참가자들의 책상 위에는 도장을 새길 돌과 도장을 파는 전각도, 연필, 지우개, 붓펜 등이 놓여 있었다. 이날 도장에 쓰인 돌은 중국 랴오닝(遼寧) 지방에서 나온다고 해서 요녕석이라고 불린다. 석질이 조금 물러서 초보자가 새김질하기 좋은 돌이다. 그런데 도장 돌이 한 손에 꽉 찰 정도로 굵다. 여기다 새기는 건가,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알고 보니 연습용 돌이다. 성마르게 ‘어디 한 번 폼나게 새겨 볼까’ 덤벼든 건 너무 앞서나간 거였다. 한 번도 도장을 직접 만들어 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실제 쓰일 도장에 칼을 댈 수 없는 건 당연했다.

전각도를 쓰는 법부터 배웠다. 한 원장은 “손목이 아니라 어깨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목 힘만으로 까딱까딱하며 긁어내듯이 쓰면 금세 손이 떨려서 다친다는 것이다. 칼을 든 손의 팔꿈치를 바닥에 대지 말고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어깨로 당기듯이 새김질을 해야 한다. 바깥으로 밀어내듯이 칼을 쓰면 원치 않는 방향으로 칼날이 삐쳐나갈 수도 있고 다칠 가능성도 크다. 항상 칼날이 눈에 보이도록 팔을 옆으로 살짝 돌려서 새기는 것도 부상 방지를 위해 중요하다.

전각도 쓰는 법을 배운 뒤에는 연습 돌에다 연필로 바둑판 모양을 그린 뒤 직접 새겨보는 연습을 했다. 왼손으로 돌을 잡고 오른손으로 칼을 잡는다. 칼을 든 오른손 네 번째 다섯 번째 손가락을 돌에 대고 칼에 조금씩 힘을 준다. 한 원장은 한 명씩 전각도 쓰는 자세를 잡아줬다. 참가자들의 손이 위태위태하게 아래로 아래로 조금씩 내려왔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래도 제법 금방 한 줄 한 줄 완성이 돼 갔다. 다 새긴 뒤에는 사포에다 돌을 밀어서 흔적을 지운 뒤 한 번 더 똑같은 방법으로 연습했다.

바둑판 모양을 두 번 연습해 본 뒤에는 동그라미 모양을 연습했다. 이때 한 번에 원하는 대로 다 파 내려가지 못하더라도 팠던 곳을 다시 파면 2~3줄이 나기 쉽다. 아주 얇은 선도 도장에 찍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멈추더라도 팠던 끝에서 이어 조금씩 내려가야 한다. ‘쓱싹쓱싹’ 강의실은 순식간에 사포 미는 소리로 가득 찼다.

연습이 끝난 뒤에는 실제로 새길 ‘나만의 도장’ 디자인에 들어갔다. 이날은 다들 초보인 데다 시간 제약상 한글 양각 도장을 새겼다. 한자나 복잡한 도형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참가자들은 고심 끝에 단순하지만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름의 획과 크기를 변형시켜 캘리그라피 느낌이 나도록 멋스럽게 그렸다. 하트를 그려 넣거나 이름의 음과 같은 동물을 그려넣기도 했다. 다만 인감도장으로 쓸 경우, 이름을 정확하게 파지 않으면 인감 신고가 거절될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다양한 변형을 줘도 무방하다고 한다. 주의할 것은 도장 인면(찍히는 면)에 꽉 차게 그려야 한다는 것. 도장 인면의 넓이에 비해 새긴 무늬가 지나치게 작으면 찍었을 때 보기가 좋지 않다고 한다.

우선 종이에다 그려보고 최종 확정되면 화선지에다 붓펜으로 똑같이 따라서 그린 뒤 뒤집는다. 뒤집지 않으면 찍었을 때 좌우가 바뀌는 도장이 되고 만다. 뒤집힌 그림을 보고 도장에 연필로 다시 옮겨 그린 뒤 붓펜으로 진하게 덧칠한다. 이 선을 기준으로 이제 실제 전각도를 들고 파기 시작했다. 연습은 했지만 실제 쓸 작은 도장은 새김질이 쉽지 않았다. 곳곳에서 ‘아휴’ ‘어떡해’ 하는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욕심 같아서는 예쁘고 화려한 무늬를 새기고 싶지만 몸이 쉽게 따라주지 않는다. 구불구불한 선이나 원을 표현하려다가 잘못 파서 그냥 하나의 ‘구멍’이 돼 버리기도 한다. 잘못 새겼을 경우 사포에다 밀면 되지만 지울 때도 주의해야 한다. 완전히 문질러서 새긴 자국을 지우지 않으면 선이 남아서 그대로 찍힐 수도 있다. 평평해야 할 도장 인면에 경사가 지기도 한다.

예상 밖으로 처음 시도만에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내놓은 참가자도 있었다. 보통은 참가자들이 새긴 무늬를 한 원장이 세심하게 리터치하면서 좀 더 선명하게 만들어주는데 아예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한 참가자는 다 새긴 뒤 시험 삼아 찍어 보니 좌우가 뒤바뀌어 있었다. 스케치를 뒤집지 않고 그대로 도장면에 그리는 바람에 생긴 일이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다시 사포에 박박 문지른 뒤 무늬를 옮겨 그리고 전각도로 새기는 작업을 반복했다. 리터치 뒤에는 완성된 도장의 측면에 장식용 나뭇잎을 팠다. 전각도를 살짝만 돌려도 눈송이 같은 나뭇잎이 새겨졌다.

찍었을 때 안정감 있게 보이도록 도장면의 네 귀퉁이를 살짝 사포에 밀어 곡선 처리하는 것으로 작업은 마무리됐다. 일반 문구용 인주가 아니라 서화작품에 쓰이는 광명인주로 찍어보니 살짝 주홍빛이 도는 생동감 있는 붉은색이 도장의 품격을 더했다. 광명인주는 인터넷에서도 구매가 가능한데 1냥(37.5g)짜리를 사면 거의 평생 쓸 수 있다. 내 이름 혹은 딸의 이름, 친구의 이름, 상호까지… 각자 소중하게 마음에 품고 있는 것들을 몸으로 다시 새겨 본 참가자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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