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잼잼] (10) 한복인 듯 한복 아닌 ‘맵시 스커트’…“이 계절에 딱이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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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생활 한복 치마 만들기

지난 15일 서울 양천구 신정4동의 ‘블랑마리아쥬샵’에서 진행된 ‘취미잼잼’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검은색 면 원단으로 된 생활한복 치마를 만들고 있다. 손으로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나가다보니 어느새 그럴듯한 한복 치마가 만들어졌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지난 15일 서울 양천구 신정4동의 ‘블랑마리아쥬샵’에서 진행된 ‘취미잼잼’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검은색 면 원단으로 된 생활한복 치마를 만들고 있다. 손으로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나가다보니 어느새 그럴듯한 한복 치마가 만들어졌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요즘은 한복도 패션이다. 한복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하고 단순화해 일상생활에서 한복을 입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중국의 치파오, 일본의 기모노 등이 ‘패션 아이템’으로 소비되듯이 젊은 층 가운데 한복을 입고 고궁이나 외출을 즐기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백화점에 입점하는 패션 한복 브랜드도 생겨나고 있다.

경향신문 연례기획 ‘올해는 취미를 갖자-취미잼잼’ 10월 ‘원데이 클래스’에서는 한복 치마를 직접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일일이 손바느질을 하는 과정은 수고로웠지만, 손끝에 온 정신을 집중해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다보니 정신이 맑아지고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강의는 ‘바이은(BYEUN)’의 최정은 디자이너가 맡았다. 지난 15일 서울 양천구 신정4동에 위치한 ‘블랑마리아쥬샵’에서 진행됐다.

최 디자이너는 “한복 스커트가 트렌드의 하나로 자리 잡아 구매하거나 손수 제작해서 입는 분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만든 한복 치마는 어깨에 걸쳐 입는 전통적인 한복 치마가 아니라 ‘랩스커트’처럼 허리에 둘러 편하게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전통 한복 가운데 겉치마가 풍성해 보이도록 안에 받쳐 입는 속치마의 일종인 ‘무지기 치마’가 이와 유사한 형태라고 한다. 무지기 치마를 검색해보니 알록달록한 색상에 겹겹의 속치마가 마치 프랑스의 캉캉치마 같았다. 세 시간짜리 수업이기 때문에 재단, 원단 끝 올풀림 봉제 등 기초 공임이 된 원단이 각자의 테이블 앞에 놓였다. 100% 면의 부드럽고 톡톡한 피치면 소재가 제법 포근해 보였다. 코끝에 닿는 공기가 점점 차가워지는 이 계절에 입으면 딱일 것 같았다.

길고 넓은 치마폭과 허릿단, 두 개의 허리끈, 그리고 실과 바늘이 주어졌다. 이제 노동력이 필요한 시간이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걱정이 앞섰다. 바느질 경력이라고는 가정·가사 수업 시간에 얼기설기 배운 게 다였다. 그런데 3시간 동안 치마를 만들어야 한다니. 그러나 몸으로 익힌 것들은 신기하게도 그 감각과 움직임을 오래 기억한다. 몇 차례 해보자 금세 바느질에 익숙해졌다.

먼저 허릿단에 허리끈을 다는 것부터 시작했다. 허릿단 양끝에 두 개의 허리끈을 박음질로 튼튼히 연결해야 한다. 이날 만든 허릿단은 폭이 10㎝ 정도로 널찍하지만 취향에 따라 좁은 허릿단과 끈으로도 제작이 가능하다.

허릿단 끝에 허리끈을 잘 맞춰 핀으로 고정한 다음 천 끝에서 1㎝ 정도 떨어진 위치에 촘촘히 박음질을 한다. 너무 촘촘할 필요는 없지만 바느질 간격이 1㎝ 이내여야 한다. 바느질 선이 비뚤어지지 않도록 초크로 선을 긋는다. 학창시절 썼던 초크는 투박하고 거칠었는데, ‘요즘 초크’는 매끈하고 날렵했다. 떨리는 손으로 박음질을 끝내고 뒤집자 신기하게도 제법 그럴듯한 허릿단이 완성됐다.

다음은 치마 허리 부분에 주름을 잡아줄 차례다. 190㎝ 정도 되는 치마폭에 6㎝ 간격으로 주름을 잡아 핀으로 고정해준다. 모두 14개의 주름이 잡혔다.

주름잡기를 완성했으면 이제 허릿단과 연결시켜야 한다. 허리끈 달기가 ‘워밍업’이었다면 치마에 허릿단을 박는 작업은 ‘본경기’다.

1m의 허릿단을 일일이 박음질로 채워야 하는데, 바느질 초보자에게는 마치 해본 적도 없는 마라톤같이 느껴졌다. “이거 언제 다하지. 미싱으로 드르륵 박아버리고 싶네.” 참석자의 탄식이 터져나왔다. 인고의 바느질이 시작됐다.

핀이 주렁주렁 달린 널따란 천에 촘촘히 박음질을 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고정된 핀을 하나씩 빼주면서 박음질을 하는데, 핀에 손가락을 찔리기 일쑤였다. 골무 생각이 간절했다. 자칫 딴생각을 하다가는 바느질이 삐뚤어지거나 주름을 제대로 고정하지 못할 것 같아 한 땀 한 땀 집중하다보니 긴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주름을 빼먹고 박음질한 부분은 당황하지 않고 ‘쿨’하게 되돌아가 박음질하는 여유까지 생겼다.

조용한 작업실에 사각사각 천을 만지는 소리만 가득하다. 어깨가 뻐근해온다. 박음질이 끝났다. 천을 뒤집어보자 주름이 제법 근사하게 잡혔다. 숨을 돌리는 것도 잠시, 이제 허릿단을 안쪽으로 접어넣어 깔끔하게 마감할 시간이다. 이번에는 박음질 대신 ‘공그르기’라고 불리는 숨은 바느질을 해야 한다. 겉으로 보이지 않도록 천 안으로 실을 1㎝가량 통과시키고, 겉면에는 1~2㎜ 정도로 실을 뜨듯이 안 보이게 바느질해야 한다. 1m 치마폭을 모두 공그르기로 박아줘야 한다. 잠시 좌절했지만 다시 숨을 몰아쉬고 바느질에 집중했다.

이제 끝이 보인다고 생각한 순간, 치마 중간이 약간 운 것처럼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바느질을 하다보니 허릿단이 점점 내려와 주름이 울어버린 것이다. 당황했지만 디자이너의 안내에 따라 그 부분만 뜯어내고 다시 공그르기를 해주니 티가 별로 나지 않았다.

마치 “정신없이 달리다보니 결승점에 와 있었어요”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한 땀 한 땀 묵묵히 바느질을 했을 뿐인데 어느덧 그럴듯한 한복 치마가 완성돼 있었다.

박음질을 하다가 실을 너무 팽팽히 당겨 천이 울퉁불퉁 울기도 했고, 공그르기를 하다가 단이 내려와 실을 뜯어내고 다시 바느질을 하기도 했지만 검은색의 도톰한 천은 다행히 모든 것을 속으로 숨겨주었다. ‘천의무봉’(선녀가 바느질한 옷에는 바느질한 자리가 없다) 수준에는 턱없이 못 미치지만 그래도 내 손으로 직접 바느질한 치마가 그럴듯한 자태를 갖추고 있었다.

거울 앞에서 최 디자이너가 알려주는 대로 치마를 입어봤다. 치마 가운데가 허리에 오도록 하고 양쪽 끝을 둘러 허리끈을 리본으로 묶어주니 세련되고 맵시 있는 스커트가 됐다. 전혀 구식으로 보이거나 촌스럽지 않았다. 입고 외출을 하거나 출근을 해도 손색없을 듯했다.

3시간의 바느질 끝에 완성된 생활한복 치마를 참가자가 직접 입어보고 있다. 랩스커트 형식으로 만들어져 멋지고 실용적이다. 김영민 기자

3시간의 바느질 끝에 완성된 생활한복 치마를 참가자가 직접 입어보고 있다. 랩스커트 형식으로 만들어져 멋지고 실용적이다. 김영민 기자


3시간 동안 바느질에 집중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단순한 육체노동이 주는 상쾌함이 있었다. 최 디자이너는 “아무 생각 않고 바느질만 하니까 정신건강에 좋다는 참가자들도 많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니 장시간 스마트폰 한 번 들여다보지 않고, 잡담도 않고 뭔가에 오롯이 집중해본 적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바느질의 ‘바’자도 모르는 ‘바알못’(바느질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시작했던 한복 치마 만들기. 그러나 올바른 길잡이가 되어줄 지도가 있고, 이를 따라 한 발짝 한 발짝 묵묵히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목표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 장인은 아니지만 내가 직접 손으로 ‘한 땀 한 땀’ 공들여 만든 한복 치마. 누군가에게 선물해도 좋고, 내가 직접 입어도 좋을 듯하다.

▶이렇게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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