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잼잼] (11) 쉽게 배우는 캘리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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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를 쓴다는 것은 펜 끝에 마음을 싣는 일이다. 지난 23일 경향신문 취미잼잼 원데이클래스에서 캘리그래피 수업을 진행한 김민희 강사가 딥펜으로 직접 쓴 글씨.

글씨를 쓴다는 것은 펜 끝에 마음을 싣는 일이다. 지난 23일 경향신문 취미잼잼 원데이클래스에서 캘리그래피 수업을 진행한 김민희 강사가 딥펜으로 직접 쓴 글씨.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요즘은 ‘엄지손가락’으로 글씨를 쓰는 게 대세다. 손글씨를 쓸 기회가 드물어지면서 그만큼 악필도 늘고 있다.

경향신문 연례기획 ‘취미잼잼-올해는 취미를 갖자’ 11월 원데이클래스는 아름답게 글씨를 쓴다는 뜻의 ‘캘리그래피’를 간단하게 배워보았다.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카페 ‘해빛’에서 독자들과 함께한 수업 내용을 공유한다.

지난 23일 경향신문 취미잼잼 캘리그래피 수업에 참가한 독자들이 손글씨를 쓰고 있다. 똑같은 문장을 머리에 머금어도 펜 끝에서는 각기 다른 글씨가 나온다. 살아온 흔적이 다르듯이, 각각의 글씨는 고유하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지난 23일 경향신문 취미잼잼 캘리그래피 수업에 참가한 독자들이 손글씨를 쓰고 있다. 똑같은 문장을 머리에 머금어도 펜 끝에서는 각기 다른 글씨가 나온다. 살아온 흔적이 다르듯이, 각각의 글씨는 고유하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체험형 캘리그래피 취재라는 말에 기자는 조금 머뭇거렸다. 취재수첩에 적은 자기 글씨도 못 알아볼 정도로 바자발적 암호화를 통한 정보보호를 장기간 실천해온 입장에서 손글씨 쓰기는 내키지 않았다. 취미활동을 하면서까지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는 않은 게 사람의 게으른 마음이다.

그래서 수업을 맡은 김민희 강사를 만나자마자 물어봤다. 악필인 사람도 캘리그래피를 하는 게 가능한가요. “그럼요, 당연히 할 수 있죠.” 캘리그래피 초보자들은 보통 붓펜이나 딥펜으로 연습한다. 이날 수업은 딥펜으로 진행됐다.

1. 일단 걱정을 접고 자리에 앉아 펜대에 촉을 끼웠다. 유성계열의 검푸른 잉크가 담긴 병에 펜촉의 가운데 작은 구멍이 난 지점까지 적신다. 펜촉은 잉크를 머금었다가, 종이 위를 따라 조금씩 풀어놓는다. 수성잉크는 종이 속으로 스미면서 약간 번지지만, 유성잉크는 종이 위에 도톰하고도 깔끔하게 흔적을 남긴다는 차이가 있다.

펜을 들었다. 펜홀의 정중앙이 정면을 향하도록 비스듬하게 쥔다. 직각으로 세워 잡으면 글씨가 예쁘게 나오지 않는다. 강사가 “종이에서 ‘슥슥’ 소리가 날 정도로 살짝 힘을 주어서 그어보라”고 말했다. 익숙하지 않은 필기구를 쥔 참가자들이 연습용 종이에 1자를 그리면서 연습했다. 매끈한 펄프의 표면을 스치는 금속성 펜촉의 가운데가 살짝 벌어지면서 잉크가 흔적을 남긴다. 종이는 아무거나 괜찮다. 이날은 복사용지를 사용했다.

2. 펜이 어느 정도 손에 익으면 글씨 쓰기를 연습해본다. 한글을 처음 배울 무렵엔 정사각형 모눈이 그려진 종이를 이용했듯이, 수업에서는 화분 모양의 사다리꼴 도형 위에 한 글자씩 연습했다.

 “악필이 되는 이유는 글자를 빨리 쓰기 때문이에요. 모든 획에는 의미가 있어요. 획을 그을 때마다 집중하고 정성을 기울여야 해요.”

숨을 느리게 쉬면서 초단위로 째깍거리던 마음속 조급함을 내려놓는 것이 아름다운 손글씨의 시작이었다. 나름 천천히 쓴다고 애썼는데도 강사는 ‘속도를 늦추라’고 거듭 지적했다. 과정과 절차를 무시한 채 결과만을 지향한 손글씨의 최종결과가 ‘악필’이었던 것이다. ‘부패 좀 하면 어때, 잘 먹고 잘 살기만 하면 된다’던 한국 정치의 종착지가 2016년의 대형 스캔들인 것도 비슷할까.

“도형 안에 글자가 꽉 차게 써보세요. 자음은 왼쪽으로, 모음은 오른쪽으로 붙여서 쓰면 돼요. 다 각자의 자리가 있죠.”

하지만 ‘ㅇ’(이응)은 작게 쓰는 게 좋다. 딥펜은 종이를 긁고 가는데, 펜이 순방향이 아니라 역방향으로 움직이면 선이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소녀가 노인이 되며, 권력은 반드시 쇠퇴하고 만다는 세상의 순리를 펜촉 끝에서 새삼 느꼈다. 글씨를 보던 강사가 한마디 했다. “손에 힘을 빼셔야 해요. 너무 힘을 주게 되면 글씨가 자연스럽지 않아요. 처음에 펜을 얹고, 자 보이시죠? 나이키 로고처럼 펜을 이렇게 떼는 거예요.” 하지만 서툰 연기자가 감정과잉적인 연기를 하고, 신임 부장이 깐깐한 것처럼 손에서는 좀처럼 힘이 빠지지 않았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앞자리에 앉은 어린 자매 유라와 미래는 태평하기만 했다. “쓰다가 망치면 다시 쓰죠 뭐.” 삐뚤빼뚤한 글씨에 낙천성이 묻어났다. 재료 특성상 잘 마르지 않는 유성잉크가 어쩌다 번져도 까르르 웃을 뿐이었다. 시험과 평가에 한평생 찌든 이 어른의 쓸데없는 초조함이 아이들에게는 과연 어떻게 보였을까,

3. 음악에 리듬이 있는 것처럼 캘리그래피에도 리듬이 있다. 돋보여야 할 글자와 수줍듯 숨는 글자가 조화를 이룰 때 전체적인 아름다움이 완성된다. 명사에는 힘을 싣고 조사에는 힘을 빼는 식이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우리 아빠 엄마”라는 글씨를 쓴다고 할 때 힘을 실을 단어는 확실하다. 목소리에 성량과 어조가 있는 것처럼, 글씨 자체만으로 정보와 감성을 전달하는 캘리그래피에도 표정이 있다. 발레는 발 끝으로 하는 예술이고, 캘리그래피는 펜 끝으로 하는 예술이다.

“요즘 젊은층은 캘리그래피를 인터넷으로 보고 배우는 경우도 적잖아요. 글씨를 보고 직접 연습하죠.”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씨도 유튜브에서 세계적 연주자들의 주법을 보며 공부했다고 했던가. 온라인으로 대학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듯이, 뭔가를 배우기 위해 특정한 장소에서 누군가를 꼭 만나야 할 필요도 사라져가고 있는 세상이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문구를 거듭 연습했다. 이날 수업은 자신의 글씨를 액자에 담으면서 완성했다. 서툰 요리에 ‘MSG’를 더하듯이 간단한 종이장식을 글자 옆에 붙였더니 꽤 그럴듯하게 보였다.

펜대와 펜촉, 잉크 같은 재료는 문구점과 온라인상점 등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연말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카드를 보낼 때 캘리그래피로 마음을 적어보면 어떨까. 느린 호흡으로 차분하게 글씨를 쓰며 이 소란한 세상에서 잠시 마음의 평화를 찾는 것도 좋은 명상법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