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잼잼] (13) 은처럼…사랑도 망치 맞을수록 단단해집니다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 글자크기
  • l
  • l
ㆍ은공예


꼭 은단 같기도 하고… 한 줌 크기의 유리병에 담긴 좁쌀만 한 은 알갱이들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지난 18일 서울 보광동 금속공예 공방 ‘아티펙스’의 은은한 조명 아래 수강생들이 마주 보고 앉았다. 공방 박성섭 대표(32)는 “한 번 만져보라”고 권했다. 자세히 보니 동글동글한 놈, 삐죽삐죽한 놈… 제각각이다. 순은 99.9%의 ‘그레뉼’이라고 불리는 은 알갱이다. 보드랍기도 까슬까슬하기도 했다. 과연 이걸로 반지를 만들 수 있을까.

경향신문 연중기획 ‘취미잼잼-올해는 취미를 갖자’ 2017년 첫 행사에서는 은공예를 배웠다. 이날 수강생들은 3시간 남짓 동안 은반지 만들기에 도전했다. 박 대표는 우선 은반지의 기본 재료가 되는 은 막대 만드는 과정을 보여줬다. 보통 은 92.5%에 7.5%의 다른 금속을 넣어 합금한다. 이렇게 하면 순은보다 광이 잘 나고 단단해진다. 잘 휘는 은 젓가락은 순도가 높다. 비율에 맞춰 저울에 그레뉼 은 알갱이 46.25g을 올리고, 이어 주로 구리 성분으로 이뤄진 3.75g의 알리뇨 알갱이를 올렸다.

연결점 부분에 땜 알갱이를 녹여 올린 뒤 흘려넣으면서 땜질하고 있다. 지저분해 보이지만 가공을 마치면 어느 부분에 땜질을 했는지 티가 나지 않는다. 정지윤 기자

연결점 부분에 땜 알갱이를 녹여 올린 뒤 흘려넣으면서 땜질하고 있다. 지저분해 보이지만 가공을 마치면 어느 부분에 땜질을 했는지 티가 나지 않는다. 정지윤 기자


금속을 다룰 때는 불이 필수다. 순은은 섭씨 960.5도에서 녹는다. 한 손에 쏙 들어갈 만한 작은 도가니에 방금 계량한 그레뉼, 알리뇨 알갱이들을 쏟아 넣었다. 가스 토치는 가스에 산소를 더해서 화력을 높였다. 가스 토치로 도가니를 3~4분쯤 달궜을까. 은 알갱이들이 서로 엉겨 한 몸으로 녹아 붙기 시작했다. 좀 더 지나자 하나의 큰 물방울처럼 변했다. 물방울 가장자리는 범상치 않은 진홍빛이 감돌고 있었다. 그만큼 뜨겁다는 뜻이다. 참가자들은 예상보다 센 화력에 움찔하며 피하면서도 스마트폰을 들이대고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은물을 부을 ‘골쇠’라고 불리는 쇠틀도 불을 가해 예열했다. 쇠틀을 예열하지 않으면 은물을 붓자마자 식어 굳어버리기 때문이다. 골쇠에다 나중에 굳은 은이 잘 빠지도록 왁스도 발랐다. 여기에 은물을 부으니 길쭉한 막대 모양이 됐다. 번쩍 들어 물에 넣자 ‘피식’ 하는 김빠지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식어 굳는다.

“기본적으로 대장간에서 하는 방법과 유사합니다.” 박 대표의 설명이 이어진다. “뜨거운 금속을 식혀 냉각했기 때문에 안에 기포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은 입자들이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가 된 셈이죠. 만져보세요. 좀 물렁물렁할 겁니다.” 만져보니 진짜 쉽게 구부러졌다. 이 상태에서 단단함을 얻으려면 단조 작업이 필요하다. 은 막대를 모루에 얹은 뒤 쇠망치를 들고 네 면에 걸쳐 골고루 두드렸다. 조금 두드렸더니 은 막대에 차츰 윤기가 돈다. 달궈서 식히고 두드리는 열처리 과정을 3~4차례 거친 뒤 압연기에 넣어 은 막대의 대략적인 크기와 모양을 잡는다. 은반지의 기본 재료가 완성된 셈이다.

서울 보광동 ‘아티펙스’ 공방에서 진행된 ‘취미잼잼’ 은공예 원데이클래스에서 박성섭 대표가 참가자들에게 작업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서울 보광동 ‘아티펙스’ 공방에서 진행된 ‘취미잼잼’ 은공예 원데이클래스에서 박성섭 대표가 참가자들에게 작업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투닥투닥’ 많은 시간이 지나간 것 같은데 본격 작업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보이지 않게 미세하게 휘어 있는 은 막대를 곧게 바로잡기 위해 모루에 놓고 나무망치로 사면을 두드린다. 작업에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망치를 사용한다. 모루 작업대를 받치고 있는 통나무에는 크기와 재질이 다양한 망치들이 둘러가며 걸려 있었다.

이제 손가락 치수를 잴 차례다. 사이즈를 측정하는 링게이지를 번갈아 가며 손에 끼워보고 맞는 치수를 알아낸다. 호수에 따라 손가락 둘레 길이가 환산된 표가 작업대에 붙어 있었다. 은 막대에 버니어캘리퍼스를 대고 길이를 표시했다. 문자나 숫자를 표시하고 싶다면 실제 반지가 될 부분의 가운데(혹은 원하는 위치)에 점을 찍어 둔다. 글자가 각인된 쇠 도장을 그 위에 놓고 망치로 한 번 딱 하고 경쾌하게 두드려 주면 글자가 은 위에 선명하게 박힌다. 각인이 끝나고는 아까 표시해 둔 길이에 맞춰 1㎜ 정도 여유 있게 실톱으로 자른다. 자른 부분을 줄로 반듯하게 다듬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그저 겉으로만 봐선 반지를 만드는지 뭘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둥근 쇠막대에 길이를 맞춰 자른 은 막대를 대고 구부리면서 우레탄 망치로 살살 두드려주자 제법 동그란 반지 모양이 돼 간다. 어느 정도 동그랗게 만들었다 싶으면 은 막대의 양 끝이 맞닿아 튀어나온 부분을 두드려 두 끝이 붙게 한다. 맞닿아 생긴 틈에는 작은 땜 알갱이를 녹여 넣어 땜질했다. 핀셋으로 보일까 말까 하는 땜 알갱이들을 반지 안쪽과 바깥쪽에 집어넣는 광경이 아슬아슬했다. 땜질과 각종 작업으로 지저분해진 반지는 은 전용 유산에 넣어 한 번 삶아주면 뽀얗게 변한다.

마무리 작업이다. 우선 땜질 부분을 줄로 다듬어 감쪽같게 만든다. 이어 유산에 넣어 끓인 반지를 사포가 달린 핸드피스로 문질러 주자 뽀얀 층이 갈려 나가고 광택이 살아난다. 거칠기 240의 사포로 한 번 해 주고 둥근 봉에 끼워 두드리면서 원 모양을 맞춰 준다. 거칠기가 400인 사포로 다시 한번 다듬는다. “이 정도면 다 된 건가요?” 참가자의 질문에 박 대표는 단호하게 말했다. “더 하셔야 해요.” 마무리 작업이 가장 오래 걸렸다. 사포로 다듬은 반지는 기계로 표면을 한 번 잡아준다.

여기서 광을 내려면 표면을 더 곱게 사포로 문질러야 한다. 표면을 최대한 고르고 깔끔하게 만들어줘야 반짝반짝 윤이 난다. 빛을 잘 반사하기 때문이다. 은반지는 손으로 계속 끼고 다녀야 윤기가 유지되는데, 이것도 반지가 옷이나 다른 소재에 알게 모르게 계속 마찰하면서 표면이 다듬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끼지 않고 방치된 반지는 금세 변색된다.

이번 참가자들은 모두 무광 반지를 선택했다. 무광은 유광과 반대로 일부러 표면에 약간의 스크래치를 내 줘야 한다. 수세미바를 핸드피스에 연결해 골고루 문질러줬다. 여기에 약간의 회색빛을 더하려면 착색 약품에 넣고 살짝 금속을 태워준다. 새까매진 반지를 살짝 다듬으면 고급스러운 회색빛의 반지가 완성된다. 참가자들은 “시중에서 사 온 것 같다”며 탄성을 냈다.

“작업이 생각보다 고되죠? 은공예가 결국 인건비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이보다 더 많이 공을 들일 수도 있는데 비용이나 시간을 생각해 적정선에서 결정하죠.” 박 대표는 금속공예를 전공한 뒤 주얼리 디자인 일을 하기도 했고 금속공예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2014년부터 이 공방을 운영 중인데, 3월 즈음부터는 백화점에 입점할 새로운 주얼리 브랜드를 론칭한다고 했다.

그에게 은의 매력을 물었다. “예전에는 과시하기에 좋고 환금성이 뛰어난 금을 선택하든지 아니면 도금 처리된 저렴한 액세서리를 하든지 둘 중 하나였어요. 은은 금의 가치와 액세서리의 패셔너블한 점을 함께 가지고 있어서 각광받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 젊은 분들은 비싼 금으로 예물을 주고받는 것에 집착하지 않아요. 저희 공방에 오셔서 은으로 커플링을 함께 만들고 남은 돈으로 신혼여행을 더 좋은 데 가죠. 형식에서 벗어난 실용을 추구하는 세태가 은에 딱 맞는 것 같습니다.”



[ 취미잼잼 바로가기 ]
(12) 네가 있기에…올 크리스마스는 외롭지 않아
(11) 쉽게 배우는 캘리그래피
(10) 한복인 듯 한복 아닌 ‘맵시 스커트’…“이 계절에 딱이네”


ⓒ 경향신문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늘의 인기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