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잼잼] (14) 실수해도 슥슥 수정…임기응변이 통해서 좋아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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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민화 그리기

지난 15일 열린 경향신문 취미잼잼 ‘민화 그리기’ 클래스에 참가한 독자가 가느다란 붓으로 붉은 닭 그림에 색을 입히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지난 15일 열린 경향신문 취미잼잼 ‘민화 그리기’ 클래스에 참가한 독자가 가느다란 붓으로 붉은 닭 그림에 색을 입히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휑한 벽에 무엇을 걸 것인가. 집에 들어서면 한쪽 벽이 늘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미니멀리즘 간결한 인테리어가 유행이라고는 하지만 회색톤의 벽은 무표정했다. 단정하게 세안하고 기초화장을 마쳤지만 눈썹을 그리지 않은 얼굴을 보는 것 같았다. 아쉽던 차에 ‘민화 그리기’ 원데이클래스를 발견하고 경향신문 독자들과 함께 도전해보기로 했다. 수업은 지난 15일 저녁 서울 강남역 인근 ‘클래스포트’ 강의실에서 김혜영 강사의 도움으로 3시간 넘게 진행됐다.

민화는 공예적 요소가 강하다. 생활 속 아름다움을 배가하기 위해 집 안을 꾸미는 용도로 많이 사용되어 왔다. 사진은 서울 강남 클래스포트에 전시된 민화 완성작들. 김기남 기자

민화는 공예적 요소가 강하다. 생활 속 아름다움을 배가하기 위해 집 안을 꾸미는 용도로 많이 사용되어 왔다. 사진은 서울 강남 클래스포트에 전시된 민화 완성작들. 김기남 기자


민화는 최근 취미활동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도안을 직접 그릴 정도의 실력이 없어도 부담이 없다. 마음에 드는 민화 위에 비치는 종이를 대고 선을 딴 다음에 물감으로 색을 입힐 수 있어서 ‘한국식 컬러링’으로도 불린다. 색과 선에 집중하면서 아름다운 형태를 만들다보면 마음이 차분하게 정화되면서 만다라를 그릴 때의 경건함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흩어서 다시 무로 돌리는 종교적 만다라와 달리 이 수업에선 그릴 때부터 보관용 액자 위에 그린다. 민화는 실용성이 먼저다.

강의실에는 참가자들이 수업에 앞서 미리 선택한 모티브의 밑그림이 순지에 준비돼 있었다. 한국화에 사용되는 붓, 물감을 비롯한 재료들도 마련됐다. “3시간은 빠듯하니 일단 먼저 칠부터 시작하시죠.” 강사가 채근했다. 이론보다 실습이다.

모란을 선택한 참가자들은 먼저 흰색으로 바탕을 입힌 모란 꽃잎에 맑은 빨강 물감을 바른 가느다란 붓으로 테두리를 입혔다. 붓은 되지도 묽지도 않은 농도로 조절한 물감에 적신다. 붓과 순지가 맞닿는 팽팽한 접점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진한 선이 비뚤어질까 손에 힘을 많이 주었더니 손가락이 저릿저릿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손을 다시 부드럽게 가다듬었다. 힘을 준다고 붓이 잘 나가는 건 아니다.

다음은 ‘바림’이다. 민화에서 하나의 색이 다른 색과 은은하게 섞여 스며드는 것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진한 농도의 물감을 작은 면적에 칠한 뒤, 맑은 물에 적셔 뾰족하게 끝을 다듬은 다른 붓으로 정성스럽게 펴바른다. 여러 차례 반복해서 붓질을 해주면 종이에서 색이 배어나온 것처럼 매끈해진다. 최상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은 최선을 다한 인공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셈이다. ‘파운데이션을 전용 브러시로 얼굴에 발라 화장할 때와 비슷한 듯하다’고 말하자 김 강사가 웃었다.

색을 입히는 과정을 통해 그림은 생명력을 얻고 그리는 사람은 마음의 기쁨을 얻는다. 지난 15일 열린 경향신문 취미잼잼 ‘민화 그리기’ 원데이클래스 참가자들이 채색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색을 입히는 과정을 통해 그림은 생명력을 얻고 그리는 사람은 마음의 기쁨을 얻는다. 지난 15일 열린 경향신문 취미잼잼 ‘민화 그리기’ 원데이클래스 참가자들이 채색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바탕에 칠한 흰색 위로 붉은색이 점점 퍼져 나가는 느낌으로 만들어주세요. 만약 붓질이 너무 나갔다 싶으면 바림을 반대 방향으로 하시면 됩니다. 흰색이 위로 덮어주게 되지요.” 붓은 물기가 너무 많으면 번지고, 너무 적으면 끝이 갈라져 결이 거칠어진다. 항상 그 중간이 될 수 있도록 붓을 살핀다.

한 시간 반쯤이 지나자 모란꽃 세 송이가 소담스럽게 피어났다. 부귀의 상징물로 민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테이블 맞은편 그룹 참가자들은 정유년의 상징인 붉은 닭에 화려한 깃털을 꼼꼼히 입히는 중이었다. 닭은 새벽을 알리는 짐승으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뜻하기도 해서 역시 민화의 인기 소재로 꼽힌다. 국화를 주제로 한 그림을 선택한 이들은 날렵한 국화 꽃잎 위에 조심스럽게 바림으로 색을 더하고 있었다.

민화는 조선조 후기에 신흥 부유층이 된 농민과 상인들이 주요 작품 구매층으로 떠오르면서 유행한 화풍이다. 양반계층이 주로 기개와 절개를 의미하는 매·난·국·죽 사군자를 즐겨 그린 것과 달리 민화는 실용적이다. 수요층의 요구에 부합하기 위해 공예적인 요소가 두드러졌다. 소재도 다양하고 화풍도 자유분방하고 투박하면서 익살스럽다. 모란꽃은 흥겹고, 새들은 날아들고, 호랑이는 실실거리고, 나비들은 사랑에 빠지고, 서민을 상징하는 까치들은 깔깔거린다.

담채가 주로 많은 사군자 그림과 달리 민화는 강한 색 사용을 주저하지 않고, 보색도 즐겨 쓴다. 용 그림이나 십장생도같이 무교에서 쓰이는 그림도 역시 민화의 한 종류다.

“앗!” 한 참가자가 나지막하게 비명을 질렀다. 거의 다 완성한 닭 그림 위로 물감이 번진 것이다. 김 강사는 ‘괜찮다’며 얼룩이 마를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다. 순지가 다시 빳빳해졌을 때 강사가 슥슥 위에다 나뭇가지 하나를 더 그려넣었다. 이런 임기응변이 가능한 점도 민화의 매력이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으므로, 실수도 어렵잖게 바로잡을 수 있다.

그렇게 3시간이 지나 그림을 거의 완성하고 일어나려는데 사방에서 ‘아이고 허리야’ 소리가 터져나왔다. 얼마나 몰입했던지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3시간 동안 중간에 딴짓할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좀 지친 나머지 꾀가 나서 마지막으로 나비를 칠할 때 흰색에 검정을 쫑쫑 얹은 배추흰나비로 그렸다. 그림도 체력이구나 싶었다. 중국 북송시대의 명작인 ‘청명상하도’를 그린 화가 장택단을 잠시 생각했다. 5m가 넘는 두루마리에 깨알같은 사람들 표정까지 살려 그려넣은 그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10년 넘게 걸렸다고 한다. 그는 현대의학이 조언하는 대로 근골격계 질환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50분 작업 10분 스트레칭’ 원칙을 지키면서 작업을 견뎠을까. 몰입한 나머지 시간감각을 잃어버리진 않았을까.

집에 가져온 그림을 걸어보았다. 무표정하던 벽에 생기가 돌았다. 그림을 처음 구매한 조선 농민도 아마 이런 즐거움을 느꼈겠거니 짐작해 보았다. 그 농민도 만약 시간이 충분했다면 직접 민화를 취미 삼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생활에 아름다움을 깃들게 하려는 건 인간의 본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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