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잼잼] (18) 프랑스 자수- 한 땀 한 땀 “어휴 힘들어”…근데 멈출수가 없네?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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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이대로 장인이 될 것 같아…”</b> 취미잼잼 프랑스 자수 원데이클래스에 참석한 한 독자가 두 가닥 실을 이용한 피시본 수법으로 나뭇잎을 표현하며 한 땀 한 땀 밑그림을 채워나가고 있다. 이준헌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이대로 장인이 될 것 같아…” 취미잼잼 프랑스 자수 원데이클래스에 참석한 한 독자가 두 가닥 실을 이용한 피시본 수법으로 나뭇잎을 표현하며 한 땀 한 땀 밑그림을 채워나가고 있다. 이준헌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주의 - W A R N I N G

한번 시작하면 쇠뿔을 단김에 뽑듯 해야 일한 기분이 나는 사람, 미드 <왕좌의 게임> 시리즈도 연휴 때 한번에 몰아봐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종결욕구가 강한 이에게 자수는 근골격계 질환을 유발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활동임.


2년쯤 전에 야생화 자수에 매력을 느껴 5만원 넘는 돈을 들여 자수 도구를 구입한 적이 있다. 관련 서적을 보면서 따라해볼 요량이었다. 택배상자에는 지름 15㎝짜리 둥근 자수틀과 스무 가지 색깔의 면사, 일본제 동양 자수바늘 12개 묶음과 작은 가위, 연습용 두꺼운 광목천 한 마가 담겨있었다.

색실을 풀어 엉키지 않도록 작은 실패에 감아 나눈 뒤 첫 연습작에 착수했다. 자수틀에 맞게 천을 자른 후 팽팽하게 당겨서 고정시키고, 수성펜으로 밑그림을 그린 뒤 한 땀씩 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완성 후에는 재료를 다시 고스란히 택배상자 안에 넣어 봉인했고 두 번 다시 손을 대지 않았다. 무서웠다. 한 번 바늘을 잡으면 새벽녘까지 손에서 떼어낼 수가 없었고 한 시간이라도 빨리 완성하고야 말겠다는 하잘것없는 집념은 어깨결림과 목결림, 수면부족으로 이어졌다. 자수는 보기에는 무척이나 상냥하지만 실제로는 어마어마하게 ‘빡센’ 취미다. 그 온도차라니.

경향신문 연례기획 ‘취미잼잼-올해는 취미를 갖자’ 6월의 원데이클래스에서는 ‘빡센’ 프랑스 자수를 배워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아쿠픽투라’ 공방을 운영하는 김현아 작가와 여성 독자 8명이 지난 14일 저녁 서울 강남역의 한 작은 강의실에 옹기종기 모였다.



■ 자수는 실로 그리는 그림

<b>선생님 도와주세요</b>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의 한 스터디 공간에서 진행된 경향신문 연례기획 ‘취미잼잼-올해는 취미를 갖자’ 프랑스자수 원데이클래스에서 ‘아쿠픽투라’ 공방을 운영하는 김현아 작가가 참가자들에게 자수 기법을 설명하고 있다. 이준헌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선생님 도와주세요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의 한 스터디 공간에서 진행된 경향신문 연례기획 ‘취미잼잼-올해는 취미를 갖자’ 프랑스자수 원데이클래스에서 ‘아쿠픽투라’ 공방을 운영하는 김현아 작가가 참가자들에게 자수 기법을 설명하고 있다. 이준헌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이날 수업의 주제 그림은 꽃과 딸기가 흐드러진 풀밭에서 낮잠을 즐기는 붉은 여우였다. 서양자수의 기본인 프랑스 자수의 기초 수법(繡法) 10가지를 익혀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바늘을 손에 쥐었다. 동양자수 바늘보다 귀가 더 컸다. 실의 재료와 굵기를 조절하면서 다양한 질감을 낼 수 있는 게 프랑스 자수의 매력이다. 시판되는 자수용 면실은 6가닥이 한 줄기인데 이걸 가르지 않고 한꺼번에 쓰기도 하고, 두세 가닥만 나눠 쓰기도 한다. 실이 두껍다보니 천을 통과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 억지로 바늘을 뽑으려고 하면 천이 찢어질 수 있어요. 도움닫기하면서 점프하는 것처럼 바늘을 ‘하나, 둘, 셋’ 하면서 손목의 순간적인 힘을 사용해서 뽑으면 쉽답니다.” 김현아 작가가 요령을 알려주었다.

가장 먼저 직선으로 놓는 땀인 ‘스트레이트’ 위에 ‘프렌치노트’로 동글동글 매듭을 얹었다. 수를 놓을 자리 아래에서 바늘을 뽑아 꺼낸 뒤 바늘 위에 실을 두 번 감아 나온 자리 바로 옆으로 실이 엉키지 않도록 조심해서 아래로 뽑아낸다. 귀여운 푸른 꽃들이 옹기종기 피어났다. 쉽지만 은근히 헷갈려서 이날 수업 가운데 가장 시간이 많이 걸렸다.

‘스파이더웹 로즈’는 실을 거미줄처럼 엮어서 장미로 만드는 수법이다. 원을 5등분하듯 스트레이트로 놓은 뒤 6가닥 통실을 한 땀씩 거르며 두른다. 여기까지 벌써 1시간. 참가자 중 한 명이 “힘들어서 욕 나올 것 같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촬영 취재를 온 사진기자가 “이게 한 시간 동안 한 거냐”며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돌직구를 던지더니 “오늘 꼭 완성하시길 바란다”는 덕담을 남기고 떠났다. 강의실에 웃음이 터졌다.

나뭇잎은 땀끼리 서로 사선으로 마주보는 ‘피시본’(생선 뼈 모양에서 나온 단어)으로 채운다. 나뭇잎 양쪽 대칭이 살짝 겹치는 느낌으로 놓아야 면이 비는 곳 없이 촘촘하니 예쁘다. 그런데 잠깐 방심하면 사선이 아니라 평행선이 된다. 내 마음의 코끼리를 붙들어매는 것의 어려움을 틱낫한 스님이 말했던가. 바늘 역시 그러하다.

벚꽃잎은 매끈하게 실의 질감을 살려 면을 채우는 ‘새틴’ 기법을 사용했다. 기본이 되는 기법이지만 매끈한 실의 질감을 잘 살리기가 쉽지 않다. 땀을 이미 놓고 난 뒤에야 실이 울룩불룩한 것을 발견하기 일쑤다. “내가 갈 방향 위에 미리 실 가닥을 얹어서 가늠한 뒤 그대로 바늘을 통과시키면 비교적 매끈하게 놓을 수 있어요.” 김 작가가 도움말을 주었다.

작은 꽃잎은 느슨한 원형고리를 바깥쪽으로 고정시키는 ‘레이지데이지’ 스티치를, 딸기는 ‘체인스티치’로 면을 채워서 특유의 올록볼록한 질감을 살렸다. 마지막으로 여우는 롱앤쇼트 스티치로 털의 질감을 살렸다. 세 가지 색을 더해 다리 쪽에 그라데이션을 표현한다.

이날 수업에서는 자수 기법만 배우고, 완성은 각자의 과제로 남겨졌다. 취재니까, 그냥 여기까지만 해야지 결심했는데, 나는 또다시 마치 마법에 홀린 듯 다음날 점심시간에 자수틀을 쥐고 여우의 털을 한 땀 한 땀 수놓고 있었다. 선으로 면을 채우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현대인에게 스마트폰이 ‘시간 잡아먹는 기계’라고 불리는 것처럼, 옛사람들에게 자수 역시 그렇지 않았을까. 다만 차이가 있다면 자수는 ‘지금 이 순간’ 정지된 천 위에 온 정신을 집중한 바늘을 꽂는 능동성이 두드러진다는 점이겠다.

■ 무아지경 자수의 매력

자수의 매력은 무엇일까. 김현아 작가는 말한다. “천만 상하지 않는다면 자수는 다시 고칠 수 있어요.” 바늘로 뀄던 자리의 실을 다시 풀고, 새로운 색의 실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채울 수 있다. 수성펜으로 그린 밑그림은 자수판 통째로 물에 담그면 원래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녹아 사라진다. 천이 마른 뒤 틀에서 자수를 꺼내고 천 주변을 버튼홀 스티치로 마무리하면 일상 소품 어디에나 붙일 수 있는 나만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기계 자수에서 느끼기 어려운 정감은 한 땀 한 땀 집중한 내 손 끝에서 만들어진다.

자수 취미인구가 늘어나면서 유튜브를 비롯한 온라인 동영상으로 여러 스티치를 집에서 배우는 것도 가능해졌다. 검색하면 여러 수법을 소개한 동서양의 다양한 비디오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자수는 역시 함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는 게 최고인 듯했다. 힘들다고 투덜대는 사람마저 세 시간 넘게 몰입하도록 만드는 활동은 결코 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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