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잼잼] (20) 내 마음의 풍경, 펜 가는 대로 그려요…정답은 없어요
김유진 디자이너 yjdigita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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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여행지 펜 드로잉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하루스튜디오에서 진행된 경향신문 연례기획 ‘취미잼잼-올해는 취미를 갖자’ 여행지 펜 드로잉 원데이클래스 참가자들이 해외 풍경 사진을 자신만의 화풍으로 표현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하루스튜디오에서 진행된 경향신문 연례기획 ‘취미잼잼-올해는 취미를 갖자’ 여행지 펜 드로잉 원데이클래스 참가자들이 해외 풍경 사진을 자신만의 화풍으로 표현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여름도 끝자락이다.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지난 폭염을 묵묵하게 이겨낼 수 있던 것은 아끼고 미룬 휴가 계획 덕분이었다. 추석 연휴를 포함한 긴 일정의 여행을 기대하면 힘이 솟았다. 이번 여행을 좀 더 잘 기억하는 방법은 없을까. 스마트폰으로 찍은 디지털 사진도 좋고, 멋진 색조로 탈바꿈시키는 사진 보정 앱들도 훌륭하지만, 내가 본 풍경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마침 경향신문 연례기획 ‘취미잼잼-올해는 취미를 갖자’에서 초보자를 위한 ‘여행지 펜 드로잉’ 수업을 열었다. 지난달 21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하루드로잉’ 스튜디오에서 배운 여행 스케치의 노하우를 정리해봤다.

펜 그림은 여행자를 위한 소묘이다. 가방에 담은 가벼운 스케치 노트와 펜 한 자루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그릴 수 있다. 그늘 한편에 엉덩이를 붙이고, 눈에 담은 풍경을 슥슥 종이 위로 옮긴다. 오로지 선만으로 내 마음 안에 담긴 풍경을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르네상스 시대의 대가들이 활동하던 14~16세기 이탈리아에서 이 같은 소묘는 ‘디세뇨(disegno)’로 불리면서 하나의 예술 장르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종이 공급이 늘어나면서 세상을 탐구하고 기록하는 방식이 기존의 나무판을 넘어 더 자유로워진 것이다.

이날 수업에서는 일반 복사용지보다 조금 더 두꺼운 모조지와 펜을 사용했다. 0.03㎜의 아주 가느다란 펜부터 2.0㎜짜리 도톰한 펜까지 표현하고자 하는 느낌에 따라 손에 쥐면 된다. 다만 볼펜은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다. 이른바 ‘볼펜똥’처럼 잉크가 덩어리지는 현상이 있어서다.

운동 전에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듯이, 드로잉 초심자들에게도 ‘손 풀기’가 필요하다. 종이 위에 직선과 곡선을 그으면서 손목과 손가락의 운동조절 능력을 일깨워본다. 낯선 이들끼리 모인 이날 수업에서는 수성펜으로 서로의 얼굴을 10초씩 그려주는 ‘릴레이 드로잉’을 시도해봤다. 옆 사람의 얼굴을 훑어보며 눈썹, 코 등을 보이는 대로 그리기 시작했다. 어설픈 몽타주에 민망함 섞인 웃음이 터지면서 어색한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다음 손 풀기는 화면에 보이는 풍경 사진들을 3분 동안 빠르게 그리는 것이었다. 갑자기 어려워진 과제에 당황한 참가자들을 위해 강사가 몇 가지 팁을 알려줬다.

그림을 그리기 전 풍경 속에서 그리고 싶은 포인트를 먼저 찾는다.

그림을 그리기 전 풍경 속에서 그리고 싶은 포인트를 먼저 찾는다.


첫째, 펜을 들기 전 풍경 속에서 그리고 싶은 포인트를 먼저 찾을 것. 둘째, 디테일한 묘사는 무시해도 괜찮다. 그리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풍경은 그리는 사람 마음이다. 셋째, 너무 단순한 풍경보다는 복잡한 풍경을 선택한 후 그리고 싶은 부분을 선택할 것. 넷째, 구름·달처럼 밝은색을 띠는 요소들은 주변을 어둡게 채워나가는 방식으로 묘사하는 것이 좋다.

“시작” 신호와 함께 화면에 건물이 빽빽한 풍경 사진이 나타났다. 급한 마음에 일단 사각형을 그려넣고 사진 속 건물들을 뜯어보던 찰나 ‘포인트에 집중하라’는 조언이 떠올랐다. 그리고 싶은 ‘한 가지’로 중앙의 주택을 택했다. 전체 풍경보단 내가 선택한 요소를 중심으로 한 획씩 그어나갔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보니 처음보다 점점 그림의 완성도가 높아졌다. 어느새 다섯 번째 화면, 마지막 풍경화 속에는 과감하게 색을 채워넣고 있었다.

다섯 장의 연습 드로잉을 끝내고 서로의 그림을 비교해봤다. 사람이 모두 다르듯이 그림도 모두 달랐다. 흑백 일색인 추상화부터 알록달록한 동화 일러스트까지 다양했다. 가는 펜과 붓펜을 교차하며 선으로 역동감을 살린 그림도 있고, 느릿느릿 여백으로 호흡하는 듯한 그림도 있었다. 누군가는 나뭇가지에, 누군가는 멀리 등선 너머로 보이는 한 채의 집에 포인트를 주었다.

“여러분들 개개인의 화풍을 찾으신 것 같나요? 실제 대상을 똑같이 묘사하는 것보단 나의 생각을 그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로 잰 듯 비례를 맞출 필요도 없어요. 여행지의 풍경을 떠올리면서 내 생각과 느낌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손 풀기를 거쳐 실전 여행지 드로잉을 위한 1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이번 여행의 목적지 중 한 곳인 프랑스의 콜마르 강과 아기자기한 독일풍 건축물들의 사진을 꺼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배경이 된 도시이자 오랭주의 주도이다.

먼저 연필로 큰 구도를 잡는다. 수정이 불가능한 잉크로 그리기에 앞서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연필로 종이 한가운데 작게 십자표를 그려 중앙을 잡고, 이를 중심으로 내가 그리고 싶은 요소들이 어디 즈음에 위치해 있는지 표시했다. 땅이나 강처럼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요소를 먼저 표시한 뒤 건물들의 지붕을 등고선처럼 이어 그었다. 머릿속에서 주문을 되뇌었다. 정확한 비례보다는 내가 그리고자 하는 큰 형태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형태를 모두 잡은 후에는 지우개를 눕혀 살살 연필선을 문지른다. 이렇게 옅어진 선을 토대로 과감하게 잉크펜으로 그림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시작이 제일 어렵다던가, 한 획을 긋고 나니 두려움은 사라지고 속도가 붙었다.

그림의 큰 윤곽선을 그린 후 테라스, 창문과 같은 작은 부분들을 채워 나간다.

그림의 큰 윤곽선을 그린 후 테라스, 창문과 같은 작은 부분들을 채워 나간다.


그림의 큰 윤곽선을 그린 후 테라스, 창문 같은 작은 부분들을 채워나갔다. 그림의 3요소인 점·선·면의 표현이 펜 드로잉에서도 가능하다. 펜을 눕혀 종이에 닿는 면적을 넓게 하면 면이, 반대로 세우면 선이 표현되고 점을 찍으면 점이 그려진다. 다만 농도와 짙기를 표현하는 방식은 선들의 간격이다. 획이 빽빽하면 색이 짙어지고, 획이 듬성듬성하면 옅어진다. 강가의 위쪽부터 아래까지, 간격이 좁은 획부터 시작해 간격이 넓은 획으로 빈 공간을 채워넣고 건물의 외벽에는 촘촘한 빗금으로 나무 질감을 심어넣었다.

세부묘사에 몰입할 때는 전체를 놓치지 않도록 주의한다. 기둥에 빠져 빗금을 한참 긋고 있자, 강사가 그림을 들고 먼 곳에서 보게 했다. 가까이에서 보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이제 시간이 얼마 없으니 더 채워놓고 싶은 부분, 완성하고 싶은 부분을 선택하세요. 상상으로 자신만의 상징을 그려넣어도 좋아요.”

비어 보이는 공간을 채워넣자 어느덧 아담한 강을 따라 옹기종기 늘어선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종이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수성펜을 꺼내들어 지붕을 칠했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작은 고양이 한 마리를 지붕 위에 얹어넣었다. 풍경 속에 내 상상을 채워넣는 것을 마지막으로 손에서 펜을 놓았다.

각자의 개성이 담긴 그림을 보며 의견을 나눈다.

각자의 개성이 담긴 그림을 보며 의견을 나눈다.


사람에 따라 같은 풍경에서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려내는 드로잉에는 정답이 없었다. 강사가 끊임없이 강조했던 ‘정답이 아닌 다양함과 다름만이 있다’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펜 드로잉은 ‘정답 맞히기’식 삶을 벗어나 떠났던 또 다른 여행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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