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잼잼](21)펠트공예- 내 손 안의 따뜻한 고양이 한 마리
이아름 콘텐츠기획자 areum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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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손을 움직이는 활동을 좋아하는 편이다. 아니, 많이 움직인다. 종일 키보드를 두들기고, 마우스를 딸깍이고,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린다. 양손잡이는 아니지만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의 액정을 터치하면서 다른 손으로 메모를 남기는 정도는 기본이다. 펠트 공예도 크게 어렵지 않을 줄 알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경향신문 연중기획 ‘취미잼잼-올해는 취미를 갖자’ 9월 행사에서는 펠트 공예로 고양이 모양 열쇠고리 장식을 만들었다. 지난 21일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이번 펠트 공예 수업은 액세서리 공방 포근제작소가 진행을 맡았다.

이번 수업은 어쩐지 ‘고양이를 키우는 분들이 참여할 것 같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초등학생인 참가자는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와 같은 색 열쇠고리를 만들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왔다고 말했다. ‘집사’들의 관심사는 언제나 고양이기에 낯선 이들이 모인 테이블에는 금세 웃음의 온기가 돌았다.





각자 미리 선택한 색의 펠트 공예 천을 받아들었다. 펠트는 양모나 기타 섬유를 열과 압력으로 눌러서 만든 원단이다. 올풀림이 없고 빳빳해서 공예에 많이 쓰인다. 고양이 목에 달 방울 끈의 색과, 고양이를 열쇠고리에 연결할 가죽끈도 선택했다. 고양이 위에 수놓을 영문 머릿글자 모양도 머릿 속에 그려봤다.

글자를 수놓는 데 쓰이는 자수법은 ‘체인 스티치’다. 바느질 모양이 마치 사슬이 연결된 모양을 닮아 붙은 이름이다. ‘부담 없이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은 펠트 천에 고작 이니셜 한 땀을 수놓자마자 사라졌다. 땀을 놓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시연도 몇 번이나 봤지만 머리로만 이해할 뿐 실제로 손을 어떻게 놀려야 할지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바늘이 천을 통과 할 때마다 이전에 놓았던 한 땀의 고리(체인)를 통과해야 하는데 손은 자꾸만 멈칫거렸다. ‘이 지점에선 어떻게 했더라? 앞으로 가야 하나? 뒤로 가야 하나?’ 머릿 속은 이미 백지상태. 그제야 생각났다. 난 머리가 생각하는 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유형의 사람이라는 걸. 요가를 할 때도 걸핏하면 왼쪽과 오른쪽도 구분하지 못하곤 했는데, 바늘을 쥔 내 손은 앞으로 가야 할지 뒤로 가야 할지 모른 채 갈팡질팡할 뿐이었다. 등에 땀 한 줄기가 흘렀다. 이를 어쩐담.

펠트 천은 생각보다 두꺼웠다. 천의 반대편에서 내가 원하는 위치로 실이 나오게 하려면 어느 부분에 바늘을 찔러넣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몸통길이 5㎝, 꼬리까지 재어도 8㎝짜리 고양이 인형이라 글씨를 수놓을 공간도 작디 작았다. 몇 번이나 강사의 확인을 받고서야 ‘R’이라는 알파벳 하나를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어보니 다른 수강생들은 이미 다음 과정에 돌입하고 있었다.



머릿글자를 새기는 고비를 넘긴 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에 들어갔다. 고양이 몸체가 될 펠트 천의 앞뒷판이 바느질로 고정될 것을 감안해 위치를 어림짐작한다. 겉에서 매듭이 티가 나지 않도록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바느질해 주는 것이 포인트다.

앞뒷판 두 장의 펠트 천을 ‘버튼홀 스티치’로 이어 붙여 고양이 몸을 만들 차례다. 버튼홀 스티치는 펠트 공예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자수법 중 하나다. 두 장의 천을 가지런히 맞춘 뒤 바늘을 넣고 한쪽 천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바느질한 뒤 다시 나머지 천은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바느질한다. 두 겹의 천을 연결한 실을 고리라고 생각하고 고리에 실을 통과시켜 앞쪽으로 잡아당긴다. 두 번째부터는 두 겹을 천을 동시에 꿰기를 반복하면서 앞뒷판을 이어붙여 나간다.

이 과정에서 한땀 한땀은 모두 똑닮아야 예쁘다. 선생님은 2㎜ 간격의 정사각형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바느질을 하라는 ‘팁’을 줬다. 2㎜라는 길이를 분명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바늘끝으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았다. 정신을 집중했건만 땀은 줄도 맞지 않고 간격도 제멋대로였다. 실과 천의 색을 몽땅 검정색으로 골랐기에 다행히도 티가 나지 않을 뿐 온통 ‘지그재그’였다. 옆자리 수강생처럼 도드라지는 푸른색 실로 회색천을 수놓았더라면 꽤나 애먹을 뻔했다.

고양이 가슴 부분부터 아래쪽으로 버튼홀 스티치를 하기 시작해 꼬리 윗부분의 반 정도까지 바느질하고 나면 이제는 솜을 채울 차례다. 봉제 인형은 폭신함이 ‘미덕’이지만 펠트 공예는 그렇지 않다. 솜을 꽉꽉 넣다 못해 이러다 터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계속 욱여넣어야 한다. 그래야 흐물거리지 않고 형태를 유지한다.

문제는 이때 발생했다. 고르지 않은 바느질이 솜의 압력을 받으면서 울퉁불퉁 제모습을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무언가를 만드는데 대충해도 되는 과정이란 없나 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꼼꼼하게 마감할 것을. 다행히 아직 완성은 아니다. 이후 바느질에는 정말 심혈을 기울였다.

이렇게 바느질하고 솜 채우기를 반복해서 처음 바느질을 시작했던 가슴 부분까지 오면 끝이다. 고양이 등 부분에는 열쇠고리와 연결할 고리를 넣은 채로 바느질을 했다. 이 과정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완성한 고양이는 등에 붙은 고리에 가죽끈을 끼워 열쇠고리와 연결한다. 열쇠고리와 가죽끈은 접착제로 연결한다.

손에 열쇠고리를 쥐어 보니 새삼 신기했다. 한땀 한땀 따라갔을 뿐인데 어느 순간 이런 열쇠고리 장식이 만들어졌다. 바느질하느라 오랜만에 정말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도, 처음 보는 사람들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도 돌아보니 조금 신기했다.

아주 초반을 제외한 과정은 대체로 순탄했다. 손이 막히는 부분은 분명 있었지만 더뎌도 계속해서 바느질을 해 나갈 수 있었다. 시작하기 전에는 열쇠고리는 작아보였고 좀 더 큰 소품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과정을 마쳐보니 이 이상의 시간을 집중하는 것도, 더 큰 물건을 만드는 것도 처음부터는 무리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초등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어머니와 십자수로 끈을 만들어 열쇠고리를 장식한 적이 있었다. 부푼 기대감에 재료를 잔뜩 샀지만, 완성한 것은 고작 십자수 열쇠고리 하나. 그때 그 색색깔의 실들과 천은 대체 언제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번 수업 참가를 계기로 다시 바느질에 흥미가 붙기 시작했다. 꼼꼼한 바느질과는 거리가 있는 ‘곰손’이지만, 손을 움직이는 것 자체만으로도 머릿 속의 온갖 응어리와 무게가 사라지는 ‘어른의 바느질’을 이번에 경험한 덕분이다. 옛날처럼 또 재료만 잔뜩 사모았다가 시큰둥해질 수도 있겠지만, 시작하는 취미를 위해 이것저것 준비하는 설레임 역시 취미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쁨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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