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잼잼] (23) 자연을 닮은, 추억을 담은…너를 생각할게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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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겨울 리스 만들기

지난 14일 서울 정동 산다미아노 카페에서 진행된 ‘취미잼잼- 올해는 취미를 갖자’ 11월 원데이클래스에 참가한 독자가 삼나무와 측백나무, 향나무를 시계 방향으로 꽂은 리스를 손질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지난 14일 서울 정동 산다미아노 카페에서 진행된 ‘취미잼잼- 올해는 취미를 갖자’ 11월 원데이클래스에 참가한 독자가 삼나무와 측백나무, 향나무를 시계 방향으로 꽂은 리스를 손질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여름에 시원해 보이던 텅 빈 벽은 체감기온이 떨어지면서 한겨울 눈밭처럼 서늘하게 느껴진다. 상록수를 엮은 둥근 리스(wreath)는 이 같은 겨울 실내공간을 꾸미는 데 최적의 장식이다. 경향신문 연중기획 ‘취미잼잼-올해는 취미를 갖자’ 11월 원데이클래스는 독자 8명과 함께 겨울 리스를 만들어보았다. 지난 14일 서울 중구 정동길 카페 산다미아노에서 두 시간 동안 진행된 수업에는 자연주의적이면서도 섬세한 꽃꽂이 감각을 선보이는 ‘아스튜디오’의 이진아 강사가 함께했다.



71ℓ짜리 대형 장바구니 2개에 이날의 꽃꽂이 재료를 짊어지고, 이진아 강사가 미리 강의실에 도착했다. 갓 자른 신선한 삼나무와 블루버드의 촉촉한 향기가 20㎡ 남짓한 공간에 커다란 겨울 숲의 상상력을 불어넣은 듯했다. 도시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후각적 상쾌함에 여행을 온 듯 기분이 들떴다.

이날 함께 만든 리스의 주제는 ‘겨울’이었다. 지름 약 20㎝로 둥글게 만 등나무 원형틀을 바탕으로 삼나무, 블루버드, 에버그린 같은 상록수들을 풍성하게 꽂은 다음 작은 솔방울이 달린 오리나무 가지와 붉은 찔레나무 열매가지, 진홍색의 레드베리를 꽂고 나서 길고 가느다란 은엽아카시아 잎으로 전체 형태에 특징을 주는 디자인이다. 겨울을 지나고 난 뒤에도 빛깔이 거의 변하지 않기 때문에 사시사철을 함께할 수 있다. 영속성을 상징하는 원형에 변치 않는 푸른 잎을 엮은 리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영원한 생명’의 상징물로 여겨졌고, 기독교 전통 속으로 스며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리스를 만들기에 앞서 먼저 등나무 원형틀을 기준점 삼아 마끈 고리를 묶는다. 위아래 방향을 가늠하기 위한 방법이다. 다음 바탕색을 까는 느낌으로 적당한 길이로 자른 삼나무 가지를 꽂는다. 등나무 사이에 시계 방향 또는 반대 방향으로 일정하게 배치하되 자연적 느낌을 살리기 위해 지나친 규칙성은 피한다. 획일적인 기준에 맞춰 인공적으로 빚어진 형태는 그 속성상 자연과 가장 멀다.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어긋나는 불규칙성만이 갖는 깊은 아름다움이 있다.

이렇게 양감을 살려 비스듬히 꽂은 가지들의 공간은 다음 가지들이 들어설 수 있는 자리가 된다. “식물은 마르면서 부피가 줄어들기 때문에 그걸 감안해서 풍성하고 빽빽하게 꽂으셔야 해요. 마르면서 빠지면 안되니까요.” 강사가 조언했다.

다음은 측백나무 가지를 꽂을 차례다. “뱀의 비늘처럼 촘촘하게 연결된 잎이 언뜻 보면 징그럽지만 리스의 다른 잎들과 섞이면 빛깔이 오묘해서 아름다워요.” 잎의 앞면은 뒷면에 비해 더 반질반질한 윤기가 돈다. 조명에 비춰보면서 앞면을 잘 가늠해보았다. 시작한 지 30분쯤 지났는데 슬슬 손가락 끝이 아프기 시작했다. 금방 꺾은 나뭇가지를 마른 나뭇가지 안에 촘촘하게 꽂아넣는 건 생각보다 그리 녹록지 않았다. 인내심을 갖고 잎이 날카로운 향나무 가지를 조심스럽게 리스 안에 섞어 넣었다. 하나의 숲 안에 나무들이 자리 잡는 것처럼, 리스 안에 하나의 자연이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다음은 오리목이다. 예전에 거리를 측정하기 위해 오 리(里)에 한 그루씩 표지목 삼아 심었다고 해서 나무는 이런 이름을 얻었다. 작은 솔방울처럼 생긴 갈색 열매는 지난해의 열매이고, 올해 열린 열매는 끈적한 진액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초록색이다. 가지를 짧게 또는 길게 잘라 대충 눈어림으로 꽂았는데 뭔가 어색하다. 솔방울들이 모두 자신의 존재감을 주장하기라도 하듯 죄다 앞자리에 나와 있다. “보일 듯 말 듯 슬쩍 뒤쪽에 꽂아주어도 괜찮아요. 어차피 리스는 앞에서만 보진 않잖아요. 옆에서도 볼 수 있고, 아래서도 볼 수 있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라도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겸손한 존재. 그 덕분에 하나의 인공물은 가장 자연에 가까운 아름다움을 얻는다.

리스는 자연건조되는 과정에서 꽂꽂이 재료의 부피가 자연스럽게 감소하기 때문에 이를 감안해 꼼꼼하고 빽빽하게 꽂는 것이 중요하다. 보기보다 쉽지 않다. 김창길 기자

리스는 자연건조되는 과정에서 꽂꽂이 재료의 부피가 자연스럽게 감소하기 때문에 이를 감안해 꼼꼼하고 빽빽하게 꽂는 것이 중요하다. 보기보다 쉽지 않다. 김창길 기자


이렇게 짙은 초록색으로 한가득 채워진 리스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보색의 찔레나무 열매와 레드베리다. 꽃시장에서 금방 도착한 레드베리는 맑은 진홍색이지만 건조되는 과정에서 점차 찔레 열매보다 더 깊은 붉은빛으로 잠긴다. 겨울 들판에서 풍성한 지난가을을 기억하는 존재와도 같다. 손으로 세게 쥐면 톡 하고 터져버리는 열매를 조심스럽게 다루면서 리스 속에 섞어넣었다. 이렇게 눈에 띄는 재료들을 꽂아넣은 다음에도 짬이 될 때마다 상록수 재료들을 짧게 잘라서 비어있는 곳이 보이지 않도록 빽빽하게 채워넣기를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쉬워보이면서 가장 어려웠던 재료인 은엽아카시아를 꽂을 차례다. 이미 리스는 완벽한 완성 상태인데 기존 겨울풍의 재료와는 느낌이 사뭇 다른 길고 빼죽한 여름풍의 풀잎을 배치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강사의 조언에 따라 무심함을 지향하며 가지를 꽂고, 리스가 며칠 건조된 뒤에야 의도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정교하게 계산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부분을 거듭 삭제함으로써 더 자연스러움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은엽아카시아가 불규칙적으로 리스의 둥근 라인에 변칙성을 더하면서 하나의 리스 안에는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의 기억이 모두 공존하게 됐다.

리스를 완성하는 동안, 참가 독자들은 묵언수행을 하듯 조용하게 자연이 준 재료와 그 재료의 조화에만 집중했다. 물아일체의 경험이랄까. 리스가 점점 풍성해질수록 작업하는 이들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다. 식물만이 줄 수 있는 치유의 경험이란 게 있는 것이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도톰한 모직으로 된 버건디색 체크무늬의 리본을 묶어서 완성한다. 재료와 색의 조용한 미감이 전체적인 리스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듯했다.

리스를 완성하자마자 기쁜 마음으로 사무실의 벽 기둥에 걸어놓았다. 그리고 눈길이 닿을 때마다 생각한다. 이 추위를 견디고 내년에 또다시 봄이 오고, 그리고 다시 또 겨울이 오는 순환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하지만 요즘 날씨가 너무 춥다. 빨리 봄이 와서 겨울 리스도 겨울의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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