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수업]내가 잘못 살아서 아픈 걸까? 고통을 지혜롭게 기록하는 법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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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은 우리가 자신의 이야기에 신경 쓸 기회를 줍니다.” 지난 17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 5층 여적향에서 열린 <인생수업 : 나의 고통을 지혜롭게 기록하는 방법> 강연에서 김신식 강사가 말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살면서 크게 앓은 경험은 다행히 아직 없지만 몇 달 전 장염을 심하게 앓았다. 위장이 평소처럼 음식물을 녹여 에너지로 만들어주길 거부했다. 내 것인 줄 알았던 위장이 별개의 생물이 된 듯 했다. 몇 끼니를 거르니 걷기도 힘들었다. 일도 쉬고 약속도 모두 취소했다. 나름 평온하던 일상이 잠시 뒤집어졌다.

급성 장염에만 걸려도 이렇다. 당뇨나 암처럼 무거운 병을 앓는 사람들이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일상이 멈추면 환자는 그제서야 과거를 되돌아본다. “내가 왜 아픔을 겪어야 하지? 야근과 회식이 문제였나? 평소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나?” 지금의 나를 만든 행적 하나하나 관찰하고 추려내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 작업에 들어간다. 김 강사는 이 기록의 과정을 ‘치병(治病)일기’라 불렀다.



감정사회학 연구자 김신식씨가 지난 17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 5층 여적향에서 열린 8월 인생수업에서 ‘나의 고통을 지혜롭게 기록하는 법’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그는 “신체적·감정적 아픔을 겪는 경험은 지금까지의 삶을 관찰하고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준다”며 이 과정을 기록하는 치병일기를 쓰는 법을 조언했다. |김창길 기자

감정사회학 연구자 김신식씨가 지난 17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 5층 여적향에서 열린 8월 인생수업에서 ‘나의 고통을 지혜롭게 기록하는 법’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그는 “신체적·감정적 아픔을 겪는 경험은 지금까지의 삶을 관찰하고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준다”며 이 과정을 기록하는 치병일기를 쓰는 법을 조언했다. |김창길 기자

■아프면 인생의 서사가 나온다

김 강사의 아버지는 목회자였다고 한다. “아버지께서는 임종을 앞둔 사람들에게 기도를 해 주시고 집에 돌아오시면 그 환자의 사연을 꼬박꼬박 들려주셨어요. 환자들은 생애 마지막 만난 아버지에게 인생 서사를 파노라마처럼 투명하게 털어놓았지요.” 감정사회학 연구자인 김 강사가 ‘질병과 이야기’라는 주제를 깊이 탐구해온 이유였다.

질병체험을 얘기하는 일은 보통 금기시된다. 환자 자신조차 낯선 감각에 당황하기 일쑤다. ‘통증을 어떻게 의사에게 설명해야 하지?’ 같은 뜬금 없는 궁금증에 ‘복통 느낌’ 같은 걸 검색하던 기억이 났다. 아픈 사람을 가장 많이 접하는 의사조차 환자의 이야기에 무관심하다. 내가 만나는 의사는 나를 고통에서 해방시켜 줄 ‘의느님’이지만, 의사가 만나는 나는 그저 그날 진료한 수십명 중 하나다. 김 강사는 미국 사회학자 아서 프랭크의 말을 빌어 “의사와 환자의 서사는 불평등하다”고 설명했다. “환자는 의사가 내 속앓이를 해결해주길 기대하지만, 사무적인 태도 앞에서 서운함을 느끼게 되죠.”

이날 강의에선 프랭크의 이름이 여러 번 등장했다. 그는 39세 때 심장병과 고환암 진단을 연달아 받았다. 인생이 뿌리째 흔들리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의 대가인 프랭크는 자신의 아픔을 들여다본 뒤 <아픈 몸을 살다> 같은 저서로 ‘고통 서사’를 이론화했다.

■혼돈을 끄적거리자

프랭크에 따르면 환자의 이야기는 보통 세 가지 패턴을 따른다. 첫번째 ‘복원의 서사’다. 김 강사는 “병을 얻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의지를 굳세게 강조하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중병 환자들의 이런 노력은 대개 수포로 돌아간다. 두번째 ‘혼돈의 서사’ 단계가 찾아온다. “병을 마주한 사람의 이야기는 서랍장에 옷을 정리하듯 차곡차곡 정리정돈 될 수 없어요. 카오스에 빠져 있기 때문이죠”

혼돈 뿐이라면, 아픔은 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김 강사는 “질병은 내 ‘자리’를 재배치하는 기회”라고 했다. 발목이 부러지면 뇌가 아무리 명령을 내려도 예전처럼 편하게 걸을 수 없다. 발이 통제가능한 자리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일본어로 ‘아프다’인 ‘이타이(痛い)’는 ‘이체(異體)’, 즉 ‘동일하지 않은 몸’이라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왜 두 가지 의미가 엮여 있을까요? 내 의지와 일치시킬 수 있던 몸의 ‘자리’가 있었는데, 아프면 내 몸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감각을 자아내는 동일하지 않은 몸인 것처럼 느껴지죠.” 두번째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리고 세번째, ‘탐구의 시기’가 찾아온다. 김 강사는 “의학적 진단의 테두리를 벗어나, 질병을 통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심도 있게 돌아보는 시기”라고 말했다. 단 유념할 것이 있다. “질병 속에서 나의 심리와 정서를 정리정돈할 수 있다는 자만을 갖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픈 신체에 찾아오는 변덕스런 감정을 가지런한 언어로 기록한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김 강사는 차라리 ‘끄적거리라’고 조언했다. “낙서를 해도 상관없어요. 우연한 시간에, 어느 카페에 앉아, 불현듯 쓰고 싶은 충동이 일면 냅킨이라도 뽑아 기록해 보는 것, 저는 그것 또한 ‘치병일기’라고 생각해요”

■잘못 살아서 아픈 게 아니다

김 강사는 수강생들에게 물었다. “혹시 아프기 전, 아프면서, 아픈 뒤, 쉽게 지나쳐온 감정이 없었나요?” 질병을 체험한다는 것은 ‘감정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이기도 하다. “암에 걸린 사람들은 ‘평소 화를 많이 내서 암에 걸린건가?’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내 질병이 특정 감정을 고집한 탓이 아닐까라는 거죠.” 허무맹랑한 생각이 아니다. ‘과민성 대장증후군’ 같은 질환도 있지 않은가. 업무 스트레스에서 오는 뇌심혈관계 질환도 요즘은 직업병으로 인정받는 추세다.

“중병에 걸린 사람들은 ‘잘못 살아왔구나’라고 생각하곤 해요. 하지만 감정을 되돌아보라는 게 본인을 죄인으로 자각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동안 묵묵히 감춰온 감정을 끄집어내 ‘감정의 이력서’로 쓰는 계기로 삼으라는 겁니다”

물론 이 모든 기록의 주체는 ‘나’다. 고통은 온전히 내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도 도와줄 수 없다. 김 강사는 오히려 “행복한 가족사진에서 내 자리를 오려버리는 용기를 감행하라”고까지 했다. “절대 부모와 자식의 위로를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예요. 아픔을 감당하는 것은 가족이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겁니다. 오히려 스스로 삶을 용기 있게 정의하려는 단계라고 볼 수 있어요.”



지난 17일 ‘인생수업’에서 소개된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는 질병 경험에 대한 에세이다. 저자는 그저 ‘질병 피해자’의 이야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아픔, 그리고 삶에 대한 치열한 성찰을 통해 “질병을 전부 살아냈을 즈음에 우리는 다르게 살게 된다”라며 질병을 대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경향신문 영상콘텐츠 ‘크로스북리뷰’에서 소개했다. 경향신문 홈페이지(www.khan.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7일 ‘인생수업’에서 소개된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는 질병 경험에 대한 에세이다. 저자는 그저 ‘질병 피해자’의 이야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아픔, 그리고 삶에 대한 치열한 성찰을 통해 “질병을 전부 살아냈을 즈음에 우리는 다르게 살게 된다”라며 질병을 대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경향신문 영상콘텐츠 ‘크로스북리뷰’에서 소개했다. 경향신문 홈페이지(www.khan.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통이 삶의 자양분이라고?

“투병 경험을 발판 삼아 넌 좀 더 나은 사람이 될거야” 병석에 누운 사람들에게 건네는 흔한 위로다. 그렇다면 아픔의 기록은 미래의 나를 위한 ‘자양분’을 모으는 행위여야 하는 걸까?

김 강사는 “고통이 양분이 된다는 희망의 수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자신의 혼돈을 가지런히 정돈하려는 시도는 결국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기 자신을 꼬집고 할퀴게 되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아픔을 ‘성분’으로 쪼개어보라고 조언했다. “내 삶을 지배하는 감정의 키워드가 있다면, 더 다양한 단어로 쪼개 보세요. 아픔을 통해 내 삶이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 마주해 보는 겁니다”

강연이 끝나고 문을 나서는 수강생들은 골똘히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고통을 자양분으로 삼지 마라”“가족의 자리로 돌아가려 하지 마라” 병을 대하는 일반적인 태도와 거리를 둔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이날 강연을 들으러 온 사람 중에는 노인도 있었고 젊은 사람도 있었다. 휠체어를 탄 사람도 보였다. 겪는 아픔도 모두 달랐다.

저마다 느낀 감상도 다채로웠다. “여성으로서 받는 억압, 가족사에서 오는 괴로움” 때문에 강의를 찾았다는 한모씨(30)는 “‘고난을 해소해 반짝반짝 빛나야 한다’는 사회적 강요가 있는데, 오히려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가능성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뜻 깊었다”고 말했다. 박홍민씨(43)는 4년째 허리디스크와 신경통을 앓고 있다고 한다. 수술도 듣지 않아 약물치료로 버티고 있다. 한때는 통증을 멋지게 이겨내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지만, 이내 절망감을 느꼈다고 했다. “지금 바로 어떤 결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이 통증을 겪으면서 얻은 것들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것들을 잘게 쪼개며 성찰해 보면 내 삶을 재정립할 수 있지 않을까요”




■8월 인생수업 안내 - ‘프로불편러는 세상에 필요한 존재일까’



8월 수업의 주제는 ‘프로불편러는 세상에 필요한 존재일까’입니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 나만 느끼는 주관적 감정은 아닐까? 불편함을 토로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딴죽을 거는 일에 불과한 건 아닐까? 이런 고민을 하는 분들과 우리의 불편함이 어떻게 생산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웹툰의 시대> <프로불편러 일기> 등의 책을 쓴 위근우 칼럼니스트와 함께 합니다.



일시: 8월 14일 오후7시~8시30분

장소: 서울 중구 정동길9 프란치스코회관 4층(지하철 1·2호선 시청역 도보 10분, 5호선 서대문역 도보 7분)

참가비용 및 인원: 1인당 2만원, 30명 안팎

신청방법: all.khan.co.kr/apply/ 또는 facebook.com/khanclass/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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