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수업] "일렁인다면 셔터 한번 눌러보세요"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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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전 찍은 나의 돌 사진. ‘붕붕카’를 붙잡고 일어선 모습이 담겼다. ‘두유 박스’ ‘크리스마스 트리’ 등 당시 나를 향한 부모의 시선이 머물렀던 지점들을 표시했다.

35년전 찍은 나의 돌 사진. ‘붕붕카’를 붙잡고 일어선 모습이 담겼다. ‘두유 박스’ ‘크리스마스 트리’ 등 당시 나를 향한 부모의 시선이 머물렀던 지점들을 표시했다.



첫 돌이 됐다. 엄마 젖을 뗀 아이는 이제 두유에 우유를 반반 섞어 먹는다. 다리에 제법 힘이 생겨 물건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단칸방 빈틈마다 아이가 먹을 두유 박스를 쟁여놨다. 사흘 뒤면 크리스마스다. 결혼 후 처음으로 트리를 들였다. 아이 눈이 반짝거렸다. 자꾸 만지려 하기에 손이 닿지 않는 화장대 위에 올려놨다. 작은 상에 명주실과 붓, 책 등을 놓아두고 아이에겐 색동 한복을 입혔다. 24방 필름을 카메라에 끼워 넣었다. 첫 사진으로 ‘붕붕카’를 붙잡고 일어선 아이를 찍었다.

지난달 18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인생수업에서 참가자들은 자신의 옛 사진을 들고 왔다. 어릴 적 부엌 아궁이에서 찍은 사진, 졸업식 사진, 부모님과 찍은 가족여행 사진, 동네에서 딸과 함께 찍은 사진 등이다. 나는 돌 사진을 골랐다. 이 사진을 고른 건 순전히 두돌 지난 아들의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전날 본가 구석에 처박혀 있던 앨범을 꺼내주던 어머니가 사진 속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이 밥솥 네가 안에 들어가서 흔들며 놀다가 망가졌잖아. 기억나니?”

‘사진치유자’ 임종진 공감아이 대표는 사진을 보는 것과 찍는 것 모두 나 자신을 느끼고 이해하는 적극적인 행위라고 말한다. 임 대표는 “‘나’라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한 개체가 사진 안에 모두 담겨있다. (자신이 찍힌 사진을 바라보면) 그 사진을 찍어준 부모, 가족, 친구 등 나를 인정하고 존중해줬던 이들의 시선을 다시 느끼게 된다”며 “나를 향한 마음들을 느끼는 것에서 그 전과는 다른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갈 수 있다”고 했다. 그제서야 사진 속 내가 아닌, 내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빠가 된 지금의 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35년 전 20대 후반이 된 젊은 부부의 시선이 보였다. 부모로서 나의 경험과 사진 속 시선들이 교차하면서, 1983년 12월22일 한 가족의 분주했던 아침이 눈앞에 펼쳐졌다.

“한 장의 사진일 뿐이긴 하지만 엄청난 추억과 기억이 들어가 있죠. 앨범에서 20~25장 사진을 고른다면 그 사진들 사이사이에 있었던 수많은 나에 대한 기억들과 접하게 돼요. 내 삶을 만들어간 특별했던 모든 것들, ‘나’라는 존재를 이뤄냈던 수없이 많은 사물들을 다시 한번 인지하는 시간들이 되죠. 상황이 되면 다시 사진 속 공간을 가보는 것도 좋을 거예요. 물론 그때와 똑같진 않겠죠. 다만 그것을 바라보면서 ‘수십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가 만나고, 기억을 통해 현재의 나를 보게 만들어요. 이게 사진이 가진 하나의 힘이죠.”



임종진 공감아이 대표가 18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인생수업에서 ‘나에게 사진을 보내다’라는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임 대표는 사진을 보는 것과 찍는 것 모두 나 자신을 대면하는 적극적인 행위라고 말한다.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임종진 공감아이 대표가 18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인생수업에서 ‘나에게 사진을 보내다’라는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임 대표는 사진을 보는 것과 찍는 것 모두 나 자신을 대면하는 적극적인 행위라고 말한다.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 당신 안에 답이 있다

사진 ‘읽기’가 나를 만나는 행위의 시작이라면, 사진 ‘찍기’는 한 발 나아간 보다 적극적인 행위다. 임 대표는 “나 자신이 자극되거나,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우리는 기꺼이 스마트폰이란 기계를 들어서 사진을 찍으려 하지 않는다. 스마트폰 안의 모든 사진들은 나 자신이 무언가를 느끼고, 지금 그것 앞에 있기 때문에 찍게 된 아주 특별한 순간들”이라고 말했다.

“‘사진을 하는 사람이니까 찍는다’ 이건 아니라는 거죠. 여행 사진이나, 하다못해 음식 사진 안 찍어본 분 있으세요? ‘그런 채신머리 없는 짓을!’ 이런 게 아닌 거죠. 굉장히 특별한 겁니다. 이게 날 흥분시키고 있잖아요. 기대하게 되고 침을 돌게 만들죠. 여러분 스마트폰 한번 열어보세요. 저는 꼭 두가지 사진을 찾게 해요. 하나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 거의 예외 없이 굉장히 많은 컷이 찍혀 있어요. 또 한 가지는 내가 어느 곳에 갔는데 그 순간 ‘내가 (여기에) 있다’는 그 느낌, 감정 때문에 찍은 사진이에요.”

내 스마트폰에도 그런 사진들이 많았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이미 충분하게 자신의 존재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꺼내놓거나 드러내는 게 부족할 뿐이죠. 뭔가 잘나 보여야 하고…. 무엇이 나를 드러내기를 방해하는가를 잘 생각해보면, 바로 나 자신이죠. 사진 강의를 하다 보면 많은 분들이 ‘제 틀린 점을 지적해주세요’ 하시는데 저는 늘 ‘당신 안에 답이 있다’고 말씀드려요.”

찰나의 감정이 셔터를 누르게 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여기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까지 담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그는 2006년 인도의 한 목화밭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당시 인도에서는 수입 목화 종자를 심었다가 병충해로 농사를 망치는 이들이 많았다. 빚에 못 이겨 목숨을 끊는 농민이 속출했다.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가 임씨의 카메라 앞에 섰다. 문드러질 정도의 발톱, 굳은살이 박인 발가락, 역설적이게도 화려한 자줏빛 옷감들이 한데 모여 연민의 감정을 끌어낸다. 그런데 옆에 돋아난 작은 싹이 의미를 좀 더 복잡하게 만든다. 연민의 감정이 ‘의지’ ‘희망’이란 단어와 연결된다.



2006년 황무지가 된 인도의 목화밭에 서 있는 여성 농민의 맨발. 옆에 푸른 싹이 돋았다. | 임종진 공감아이 대표 제공

2006년 황무지가 된 인도의 목화밭에 서 있는 여성 농민의 맨발. 옆에 푸른 싹이 돋았다. | 임종진 공감아이 대표 제공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을 때 화면 프레임을 6등분으로 나누고 1번부터 6번까지 번호를 붙인 뒤 각각 시선을 줘보세요.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프레임상 어디에 놓을지, 또 다른 이야기를 한 겹 더 얹고 싶다면 그건 또 어디에 놓을지 생각해보세요. 그렇게 진행해보면 조금 더 적극적인 표현들이 사진 속에 담기죠. 프레임을 두루두루 볼 수 있는 눈이 생기면 사진 속에 이야기가 담길 수 있습니다.”

사과를 3개월 동안 찍는다고 해보자. 그사이 사과는 썩어 문드러진다. 그런데 사과가 변화하면서 내 감정도 같이 변화한다. 임 대표는 “사과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사람은 그 사과를 버리지 못한다. 썩어가는 것임에도 존재적 가치가 바뀌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사물들의 상징과 기호를 내가 인지하고 그걸 프레임상에서 구성하면 사진에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갈 수 있어요. 내가 세상을 살면서 마주치게 되는 어떤 무언가에 대해 특정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되면 세상은 바뀝니다. 전환되는 거죠.”

■ 기억 속 응어리와 대면하는 법

사진으로 나와 대면하는 행위는 때론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임 대표는 수년 전부터 이탈 청소년, 발달장애인, 국가 폭력 피해자 등을 상대로 ‘사진 치유’를 진행하고 있다. 3년 전에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군으로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았던 5·18 유공자 이성전씨(70)와 함께, 이씨가 고문당했던 505보안대를 찾았다. 이씨는 자신이 고문당했던 장소를 36년이 흐른 뒤에야 마주할 용기를 냈다. (관련기사 ▶ [임종진의 오늘 하루] 진실이 있는 자리)

“그 전에는 왜 못 갔을까요. 공포와 분노 때문이죠. 인간으로서 완전히 해체되고 군홧발에 짓밟혔던 나와 다시 만날 수 없는 거죠. (그 공간에) 가면 생각나잖아요. 사진 치유 프로그램을 함께하면서 용기를 내어 그곳에 가셨어요. 폐허처럼 변한 그 공간에서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들을 찍으셨어요. 그래도 전혀 문제없어요. 그 행위 자체가 자신의 기억에 있는 응어리와 대면하는 거예요. 사진을 찍으려면 자신의 몸을 써서 다시 또 다른 ‘실체’ 앞에 서야 해요. 그게 사진 치유가 가진 특징이죠. 카메라를 통해 보는 것은 ‘(눈으로 직접 보는 것보다) 조금 가려져 있어서 괜찮다’는 심리적인 위안도 있고요. 그런데 기억 속의 엄청난 상처가 실제로 치료가 될까요? 기억이 없어질까요? 안되지요. 기억을 다시 마주한다는 게 두렵지만 그것을 꺼내서 어떻게 재해석하고 재장착하느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임종진 공감아이 대표가 18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인생수업에서 참가자들의 옛 사진들을 살펴보고 있다.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임종진 공감아이 대표가 18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인생수업에서 참가자들의 옛 사진들을 살펴보고 있다.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오리엔테이션은 여기까지다. 이제 마음의 신호를 수신할 차례다. 그가 말했다. “사회적인 여건, 바쁜 일상, 이런 것들로 혹여나 나라는 존재가 나에게 계속 보냈던 신호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진 않았나요? 나라는 존재에 집중하고, 나를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을 놓치진 않았나요? 그 신호를 받았을 때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도구가 사진이에요. 오늘 귀가하다가 밤하늘 한번 바라보고 괜찮다면 셔터를 눌러보세요. 길가의 쓰레기를 봤는데 마음이 일렁인다? 역시 스마트폰을 꺼내 셔터 한번 눌러보세요.”


■3월 수업은

‘누구나 하는, 천재들의 기억법’


인생수업 3월 주제는 ‘누구나 하는, 천재들의 기억법’입니다. 휴대전화에 의존하게 되면서 이젠 가족 전화번호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비밀번호를 잊어버려서 로그인을 못하는 경우도 있죠. 혹시 학창시절 ‘깜지’로 헛된 시간을 보낸 적은 없으세요? 기억력이 나빠서 고민한 적은요? 그런데 사람마다 타고난 기억력은 크게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기억력스포츠협회 정계원 대표는 평범한 사람도 방법만 알면 ‘기억력 천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생수업에서 ‘외우는 암기법’이 아닌,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기억법’에 대해 알아봅니다.

-일시 : 3월19일(화) 오후 7시~8시30분

-장소 : 서울 중구 정동길3 경향신문사 12층 강의실(지하철 1·2호선 시청역 도보 10분, 5호선 서대문역 도보 7분)

-참가비용 및 인원 : 1인당 2만원, 40명 안팎

-신청방법 : all.khan.co.kr/apply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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