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수업]기억력 천재가 되려면?…기억은 '외우기' 아닌 '떠올리기'
이아름 콘텐츠기획자 areumlee@kyunghyang.com
  • 글자크기
  • l
  • l
휴대전화를 바꿨다. 연락처 수십개가 싹 지워졌다. 동생에게 급하게 전화해야 하는데 ‘010’ 다음이 생각나지 않았다. 가족과 친구 전화번호 몇개쯤은 줄줄 외웠는데 이젠 연락처가 없으면 누구와도 통화할 수 없는 사람이 돼버렸다. 기억력을 관장한다는 뇌 속 해마는 날이 갈수록 쪼그라드는 것만 같다. 직장 동료가 별거 아니라는 듯 웃었다. “아파트 현관 비밀번호 잊어서 두 시간 동안 집에 못 들어가 본 적 있어?”

지난 19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인생수업’에서 정계원 기억력스포츠협회 대표는 “나이와 배경에 상관없이 누구나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타고난 기억력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수업 제목도 ‘누구나 하는, 천재들의 기억법’이다. 실제로 기억력을 겨루는 기억력스포츠대회에서는 40·50대는 물론 60·70대 노인들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기억은 ‘외우기’가 아닌, 누구나 할 수 있는 ‘떠올리기’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정 대표도 ‘떠올리는 기억법’을 연습해 2015년 세계기억력대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국제기억력마스터’가 됐다. 한 시간 동안 1000자리 이상의 숫자를 기억하는 수준이다.

“단순 반복을 통해 힘들게 외우는 방법으로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반면에 외우지 않더라도 기억이 나는 경우도 있죠. 다들 오늘 아침식사 메뉴는 기억나시죠? 사람들이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파악해서 방법론으로 만든 것이 ‘기억법’입니다. 힘들이지 않고 떠올릴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기억이죠.”

정계원 기억력스포츠협회 대표가 지난 19일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인생수업에서 ‘누구나 하는,천재들의 기억법’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정 대표는 기억이 ‘외우기’가 아닌 ‘떠올리기’라 말한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정계원 기억력스포츠협회 대표가 지난 19일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인생수업에서 ‘누구나 하는,천재들의 기억법’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정 대표는 기억이 ‘외우기’가 아닌 ‘떠올리기’라 말한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정 대표는 사람들이 ‘연결된 정보’와 ‘시각화된 정보’를 쉽게 기억한다고 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라는 노래 가사는 원숭이 엉덩이, 사과 등의 특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때문에 떠올리기가 쉽다. 책 한 권보다 영화 한 편이 더 쉽게 기억나는 것도 우리 뇌가 그림과 영상에 더 빨리 반응하기 때문이다.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해보세요

사물을 연결하고 시각화해 떠올리는 대표적인 기억법이 ‘기억의 궁전’이다. 자신에게 익숙한 장소와 기억해야 할 대상을 결합시켜 장기간 기억하는 방식이다.

“가장 최근 식사 자리를 생각해보세요. 누가 내 앞에 있었고 옆에 있었는지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대상을 바로 기억해내긴 어렵지만, 장소부터 접근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죠. 언제 어디서나 떠올릴 수 있는 나만의 장소가 있다면 그 장소가 (기억을 저장하는)‘기억의 궁전’이 될 수 있습니다. 주로 자신의 집을 궁전으로 하는 경우가 많고, 컴퓨터 게임 속 장소를 궁전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어요.”

퇴근해 집에 들어서는 순간을 생각해보자. 현관문부터 시계방향으로 신발장, 화장실, 침실, 주방, 베란다를 떠올렸다. 1분간 떠올리기를 계속 반복했다. 이게 처음 지어진 내 기억의 궁전이다. 정 대표가 ‘호랑이’ ‘줄자’ ‘마이크’ ‘볼펜’ ‘베개’를 기억해야 할 단어로 제시했다.

“이제 5개의 단어들을 내 기억의 궁전 속 공간에 차례대로 넣어보세요. 영상을 보듯 장면을 떠올려야 합니다. 감각이 다양해질수록 기억도 쉬워집니다. 기억의 궁전 속 책상에 ‘대통령’이란 단어를 결합시킬 때 간혹 ‘책상에서 열심히 공부해 대통령이 되겠다’ 식의 글짓기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게 결합한 기억들은 잘 남지 않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집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 같은 것을 상상해보세요. 꿈을 꾼다고 생각하세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할수록 머릿속에 잘 남고 떠올리기도 쉽습니다.”



내가 만든 기억의 궁전. 현관 입구의 신발장부터 시작해 화장실, 침실, 주방, 베란다에 ‘호랑이’ ‘줄자’ ‘마이크’ ‘볼펜’ ‘베개’를 넣어보았다. 신발장에서 “어흥!” 하던 호랑이는 쉽게 기억했지만. 베란다에서 베개를 말리는 기억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너무 평이한 기억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기억의 궁전. 현관 입구의 신발장부터 시작해 화장실, 침실, 주방, 베란다에 ‘호랑이’ ‘줄자’ ‘마이크’ ‘볼펜’ ‘베개’를 넣어보았다. 신발장에서 “어흥!” 하던 호랑이는 쉽게 기억했지만. 베란다에서 베개를 말리는 기억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너무 평이한 기억이었기 때문이다.



정신을 집중하고 내가 만든 기억의 궁전에 들어섰다. ①신발장에서 호랑이가 “어흥, 놀랐지?”하며 튀어나오는 장면을 상상했다. 호랑이를 잘 다독인 후 화장실에 들어섰다. ②화장실 두루마리 휴지가 있어야 할 자리에 줄자가 돌돌 말려있는 상상을 했다. ‘있어야 할 화장지는 어디 갔고 웬 줄자가 있지? 난감한데?’ ③이번엔 침실에 들어섰다. 침실에선 밤 늦게까지 마이크로 노래를 부르는 상상을, ④그 옆 주방에선 수저통에 숟가락, 젓가락이 아닌, 볼펜이 잔뜩 꽂혀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⑤이후 베란다로 나가 젖은 베개를 말리는 상상을 했다. (위 그림 참고)

자, 이제 단어를 꺼내올 차례다. 내 기억의 궁전을 불러냈다. 신발장부터 베란다까지 돌아다녔다. 그곳에서 호랑이, 줄자, 마이크, 볼펜을 꺼냈다. 베란다에서 베개를 말리는 모습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정 대표는 “기억이 너무 평이한 경우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기억의 궁전법을 숙달하면, 어떻게 상상해야 기억이 잘 나고 어떨 때는 안 나는지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며 “‘상상한 내용이 평이하다’는 생각이 들 땐 좀 더 신경 써 상상하게 된다. 그렇게 처리한 정보는 시간이 꽤 지나도 (기억의 궁전에서) 꺼내올 수 있다”고 말했다.

기억의 궁전은 ‘리모델링’이 가능하다. 연습 삼아 만들어본 내 기억의 궁전은 계속 사용하기에는 너무 작은 공간이다. 정보를 넣어둘 장소가 5개밖에 없다. 기억해야 할 정보가 많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 대표는 13평(43㎡)짜리 궁전을 30평, 40평으로 확장하지 않고도, 정보를 넣어둘 장소를 5개에서 50개, 500개로 늘려나갈 수 있다고 했다.

“화장실도 세면대, 변기, 샤워기 등 계속 쪼갤 수 있고 각각을 정보를 넣어두는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한 뼘’ 이상의 간격을 두고 공간을 만들어야 혼선이 생기지 않습니다. 정보를 저장할 장소를 200개 정도 갖게 되면 공부에도 활용할 수 있고, 일상에서도 도움받을 수 있습니다. 200개는 결코 많은 게 아닙니다. 집에서 50개, 학교에서 50개, 직장에서 50개를 만들 수도 있어요.”

■IT시대에 기억법이 필요한 까닭

끊임없이 자신에게 적합한 궁전을 완성해가야 한다. 기억의 궁전 속 ‘화장실 거울’과 ‘침실 거울’에 넣어둔 정보가 헷갈린다면, 정보를 넣어두는 그 장소의 특징에 더 주목해야 한다. 화장실 거울은 물기가 항상 묻어있으니 아예 기억의 궁전을 만들 때 단순한 ‘화장실 거울’이 아닌, ‘물기 묻은 화장실 거울’을 놓아두는 식이다. 기억할 때 이 ‘물기’를 이용할 수도 있다. 기억의 궁전 속 ‘화장실 거울’에 ‘호랑이’라는 정보를 넣어야 한다면, ‘호랑이가 비에 젖어 울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기억해야 할 정보를 ‘선풍기’ ‘에어컨’ ‘TV’ 등 기능이 있는 장소에 넣어두는 것도 방법이다. 호랑이가 시원한 에어컨 앞에서 땀을 말리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래도 헷갈린다면 기억의 궁전에서 그 장소를 없애버리는 것이 낫다.



20개의 장소로 만들어 본 ‘기억이 궁전’, 15번 ‘싱크대’와 16번 ‘세탁기’의 동선이 꼬여 단어가 밀렸다. 18번 ‘회오리’는 책장에서 회오리가 나오는 장면을  실감나게 상상하지 못해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20개의 장소로 만들어 본 ‘기억이 궁전’, 15번 ‘싱크대’와 16번 ‘세탁기’의 동선이 꼬여 단어가 밀렸다. 18번 ‘회오리’는 책장에서 회오리가 나오는 장면을 실감나게 상상하지 못해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정 대표는 기억의 궁전에서 정보를 저장하는 장소를 늘려보라고 했다. 이번에는 5개가 아닌, 20개의 장소를 만들게 했다. 경비실, 엘리베이터, 현관문, 신발장…집에 들어가는 순서대로 20개의 장소를 만들었다. 그가 20개의 단어를 제시했다. 각 단어를 내 기억의 장소에 결합시켰다. 이후 진행된 테스트에서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나는 모두 16개 단어를 순서대로 떠올렸다. 20개 단어를 순서대로 모두 기억해낸 참가자는 5명이었다.

“오늘 기억한 단어들은 모두 중기 기억입니다. 3일에 한 번, 5일에 한 번 반복하면 장기 기억이 됩니다. 장기 기억이 되면 장소의 도움 없이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넣을 수도 있어요. 기억의 궁전 기억법은 순서대로 기억해야 하는 정보·절차·숫자들을 처리할 때 좋습니다.”

컴퓨터, 휴대전화 같은 기기들이 많은 정보를 저장하는 시대에 기억법을 배우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는 “많이 외웠다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는 어떻게 외울까를 고민했으면 좋겠다”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생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해요. 기억은 ‘정보 저장’ 그 자체보다 ‘어떻게 정보를 처리했느냐’에 더 의미가 있다고요. 오늘 여러 단어를 기억해 봤지만 모두 다른 장면으로 기억하셨을 겁니다. 컴퓨터라면 아마 똑같은 방식으로 기억했겠지만 사람은 기억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 그냥 지나쳤던 것들을 어떻게 하면 나만의 의미로 바꿔볼 수 있을까 고민하고, 다른 정보와 결합해보세요. 새로운 것들이 보일 겁니다. 그런 활동이야말로 사실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이잖아요.”


■4월 수업은

‘죽을 때까지 함께 하는 생존운동’


인생수업 4월 주제는 ‘죽을 때까지 함께 하는 생존운동’ 입니다. 바쁜 일상에 치이다보니 제대로 운동 한번 할 시간조차 없지 않나요? 체력은 달리고, 근력은 전혀 남아있지 않고, 조금만 움직여도 금세 피곤해지지 않나요? 당신은 생존을 위한 운동이 필요합니다. 임미정 트레이너와 함께 직장이나 가정에서 쉽게 연습할 수 있는 ‘생존운동’을 배워보세요. 몸을 좀 움직여야하니 신축성 ‘1’도 없는 정장은 말고, 되도록 신축성 있는 옷, 운동화(혹은 단화) 등 편한 복장으로 오세요.

-일시 : 4월 22일(월) 오후 7시~8시30분

-장소 : 서울 중구 정동길3 경향신문사 5층 여적향 (지하철 1·2호선 시청역 도보 15분, 5호선 서대문역 도보 10분)

-준비물 : 신축성 있는 옷, 운동화(혹은 단화) 등 편한 복장

-참가비용 및 인원 : 1인당 2만원, 20명 안팎

-신청방법 : all.khan.co.kr/apply 참조




[ 인생수업 바로가기 ]
\"일렁인다면 셔터 한번 눌러보세요\"
삶을 바꾸고 싶나요? 시간·공간·사람을 정리하세요
연말 인간 관계에 지친 당신..."건강한 관계를 위해 '거리'가 필요하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늘의 인기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