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수업]“서양 와인이 최고?…한식엔 국산 와인이 더 입맛 돋우죠”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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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한국 와인의 이해 - 한국 땅, 한국 과일, 한국 와인

최정욱 광명동굴 와인연구소장이 강원 영월의 와이너리 ‘예밀촌마을’에서 생산한 한국 와인 ‘예밀 레드 드라이’를 소개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doolee@kyunghyang.com

최정욱 광명동굴 와인연구소장이 강원 영월의 와이너리 ‘예밀촌마을’에서 생산한 한국 와인 ‘예밀 레드 드라이’를 소개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doolee@kyunghyang.com



서양음식, 구운 요리에 수분 없어
입안 남은 갈증과 느끼함 없애려
강한 탄닌·높은 산도 ‘와인’ 찾아


한국 식탁엔 찜·찌개 등 수분 많아
알코올 낮고 향 좋은 ‘국산’이 적합
느끼한 음식엔 김치 등 함께 섭취


와인은 향·맛 모두 만족 주는 술
아름답고 좋은 얘기 나눌 자리서
한국 와인을 마시며 즐겨보세요


신토불이(身土不二·몸과 땅은 하나)라는 말이 있다. 1990년대 우루과이 라운드 때 외국 농산물로부터 국내 농가를 지키기 위해 채택된 일종의 ‘국뽕’ 슬로건이다. 20여년이 흐른 지금 우리 입에 들어가는 먹거리 면면을 보면 유행어는 유행으로 그쳤을 뿐 의미는 퇴색한 지 오래다. 음식은 물론이거니와, 한국인 1인당 1년에 87병을 마셔 없앤다는 ‘국민 술’ 소주도 그렇다. 원료인 타피오카(서양 돼지감자)는 대부분 수입해온다. 국산 맥주는 맥아의 90% 이상이 바다를 건너온다. 막걸리도 외국 쌀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 주변에서 한국 땅에서 난 농산물로만 빚은 ‘신토불이 알코올’을 찾는 게 이렇게 어렵다. 벨기에산 삼겹살이 익어 가는 동안 태국산 타피오카로 만든 소주를 기울이는 풍경은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지독히 글로벌한 우리 식문화의 한 단면이다.

지난 21일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10월 인생수업-한국 와인의 이해> 강연자 최정욱 소믈리에의 한마디에 고개를 갸웃했던 이유다. “대부도에서 생산된 이 와인과 데친 주꾸미를 된장에 버무려 함께 드세요. 대하철에는 대하 소금구이와 같이 드시면 더욱 좋고요.” 대부도·주꾸미·된장, 그리고 와인. 퍽 토종적인 단어들과 ‘식당 아닌 레스토랑에서’ 홀짝거려야만 할 것 같은 음료가 한 문장에 나열돼 있으니 위화감부터 들었다. 아니 일단, 한국에서도 와인을 만든다고? 와인 마니아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와알못’은 “진짜로?” 물음표부터 나왔다.

한국 와인이 대체 무엇인가. 서양 와인과는 어떻게 다른가. 최 소믈리에에 따르면 “한국 땅에서 재배한 과일을 파쇄해 발효한 알코올”을 한국 와인이라 일컫는다. 소주에 포도송이를 퐁당 빠뜨려 가정집에서 쉽게 담그는 ‘과실주’와는 전혀 다르다. 과일을 으깨 숙성시키는 과정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파쇄액을 발효시키는 탱크를 갖춘 와이너리는 국내에 150곳 정도 있다. 이 와이너리들의 큰손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집산지가 경기 광명에 위치한 와인동굴이다. 100여종의 한국 와인을 수매해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이 동굴의 와인연구소장이 바로 최 소믈리에다. 2015년 광명시에 채용돼 쓸쓸한 폐광을 한국 와인의 메카로 일궈낸 최 소장은 그가 아는 한 국내 유일한 ‘늘공 소믈리에’다.

■ 한국 와인에는 한국 음식을

이날 강연에서 최 소장은 와인에 대한 설명만큼이나 음식 이야기를 많이 했다. “혼자 우뚝 서서 ‘나 좋은 와인이야’라고 강변하는 절대적으로 완전한 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와인과 음식의 궁합을 뜻하는 마리아주(marriage·결혼을 뜻하는 단어와 같다)라는 단어도 있듯, 서양에서 와인의 역사는 음식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해 왔다.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는 수천년 동안 자신들의 음식에 맞는 와인을 발전시켜 왔어요. 그래서 이 나라 음식들을 먹을 때 마트에 가서 ‘프랑스 와인 주세요’ ‘이탈리아 와인 주세요’라며 추천을 받으면 대부분 잘 어울립니다.”

소위 ‘좋은 와인’의 기준으로는 강한 탄닌과 높은 산도, 풍부한 보디감 등을 꼽는다. 모두 서양 음식에 걸맞은 지표들이다. “서양에서는 대부분 구운 요리가 나와요. 야채도 구워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수분이 별로 없죠. 그래서 와인을 곁에 두고 짬짬이 목을 축이고, 기름기 많은 고기를 먹을 때 느끼해진 입안을 강한 탄닌감으로 씻어 주는 겁니다.”

한국의 식탁은 다르다. 찜·국·찌개 등 이미 조리과정에서 수분이 포함된 음식이 많다. 느끼한 음식에는 김치 등 채소절임을 곁들이면 된다. 게다가 코스식이 아닌 한상차림이어서, 원래 식사를 마친 후 주안상을 따로 차리는 것이 전통적인 술문화였다. 젓갈·장류 등 발효음식 일색의 상차림 역시 와인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다.

이를 두고 최 소장은 “한국 음식은 고추장·간장 베이스가 많아서 탄닌·산도·보디감이 강한 서양 와인과 붙으면 서로 치고 박고 싸우게 된다”고 묘사했다.

이즈음 최 소장이 준비해 온 와인을 맛보았다. 충북 영동의 양조장 ‘도란원’에서 빚은 샤토미소랑(화이트)이라는 와인이다. 농촌진흥청에서 육종 개발한 ‘청포랑’과 ‘청수’라는 품종을 섞어 만들었다고 한다. 언뜻 “사과맛 같다”고 느낄 정도로 새콤달콤했다. 숨을 내쉴 때마다 달큼한 향이 계속 비강에서 맴돌았다.



“어떤가요, 서양 와인보다는 (알코올이) 약하고 향이 더 좋죠?” 확실히 서양 와인보다는 떫거나 신맛이 덜했다. “이런 와인에는 아무래도 한국 음식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최 소장이 말했다. 청바지에는 정장 재킷이 아닌 흰 티셔츠가 어울리는 것처럼 말이다. “저는 이 와인을 명절에 남은 생선전과 같이 먹었을 때 제일 맛있게 마셨어요. 오미자로도 와인을 만든다는 걸 아세요? 비빔밥 먹을 때 곁들여 마시면 좋아요. 고추장은 적게, 간장으로 간을 맞춰서 야채를 비빈 다음 오미자 와인과 함께 먹으면, 오미자의 신맛이 밥맛을 돋워주죠.”

한국 와인은 한국 음식과 함께할 때 가장 빛난다는 이야기다. 다만 주도(酒道)만큼은 ‘한국적 음주 문화’ 대신 와인만의 주도를 따라야 한다. “건배할 때는 잔만 바라보지 마시고 양옆을 보고 가볍게 목례하면서 ‘반갑습니다’ 인사를 건네보세요. 괜히 건배사로 삼행시 같은 건 하지 마시고요.” 이 대목에서 좌중의 웃음이 터져나왔다. 대화의 주제도 ‘소맥’을 말아 넘길 때와는 달라야 하고, 다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소주 드시면서 무슨 얘기 주로 하세요? 쓰디쓴 술이라 목으로 넘기면 저절로 ‘크으’ 하면서 자연스럽게 힘든 얘기와 울분을 토로하곤 하잖아요.” 따져보면 지금까지 소주잔을 주거니받거니 했던 술자리가 직장 상사와 회사에 대한 성토로 이어지지 않은 적이 없던 것 같다. “와인은 달라요. 향과 맛을 즐기는 술이잖아요. 사람이 미각과 후각이 만족되면 부정적인 대화를 하기가 어려워져요. 와인은 맛있는 음식과 맛있는 분위기를 즐기는 술이에요. 물론 우리네 인생에 울분을 토하고픈, 소주 같은 술이 필요한 순간이 있어요. 하지만 아름답고 좋은 얘기를 즐길 때만큼은 와인을 드시는 게 좋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 눈부신 성과, 와이너리의 피·땀·눈물

지난 21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 본사에서 열린 ‘인생수업-한국 와인의 이해’ 강연에서 최정욱 광명동굴 와인연구소장(오른쪽)이 참석자들에게 한국 와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지난 21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 본사에서 열린 ‘인생수업-한국 와인의 이해’ 강연에서 최정욱 광명동굴 와인연구소장(오른쪽)이 참석자들에게 한국 와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와인 한 병이 탄생하기까지는 갖은 정성과 노력이 든다. 와인 생산을 위한 포도는 1년 중 딱 한 번, 8월경 수확한다. 한국은 와인의 본고장 서유럽과 달리 햇빛이 적고 비가 많이 온다. 적정 당도를 유지하려면 포도를 일일이 종이봉투로 싸매는 등 손품과 발품을 부지런히 들여야 한다. 애지중지 길러낸 포도를 걷어 발효탱크에 넣고 으깨 한 달 정도 발효시킨다. 부글부글 끓어오를 즈음 알코올이 생성되는데 이 용액을 새 탱크에 옮기는 일을 몇 차례 거듭한다. 최소 1년은 숙성시켜야 한다. 자연이 내어주는 만큼의 재료를 계절과 시간의 흐름 속에 스스로 성장시키는 작업. 공산품을 제조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생명체 하나를 길러내는 일과 닮아 있다. 마음과 시간을 쏟아부은 와인이라고 해서 금세 팔려나가지도 않는다. 최 소장은 “소비자들과 만날 루트가 별로 없다”고 했다. 대형마트에서 잘 취급해 주지도 않거니와 ‘한국 와인은 품질이 좋지 않다’는 와인 애호가들의 편견도 한몫한다. 와이너리들의 규모도 거개가 영세해 큰 규모의 수출을 하기도 어렵다. 그래서인지 국내 와인 양조업자들은 대부분 빚쟁이다. 현금흐름이 엉망이라서다.

물론 광명 와인동굴이 최대 집산지로 떠오르면서 지난 3년간 18만병에 달하는 한국 와인이 이곳을 통해 팔려나갔다. 최 소장은 “제가 열심히 팔아서 (와이너리들의) 탱크를 많이 비워드렸다”며 “하지만 대부분 양조업자들은 그 대금을 더 좋은 와인을 만드는 데 재투자한다”고 했다. “대표님, 그 돈 다 어디다 쓰셨어요?” 물으면 “응, 이번에 탱크 두 대 더 샀어”라며 해맑게 웃는 순수한 양조업자들이 부지기수다. 최 소장에 따르면 최근 2~3년 새 한국 와인은 주질이 급격히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성과에 와인과 사랑에 빠진 이름 모를 업자들의 피와 땀이 스며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얼마 전 태풍이 왔지요. 떨어진 과일은 못 팔아요. 이 낙과들을 지역의 와인 생산자들이 수매해 와인을 만들 수 있죠. 국내 과실 농가의 어려움을 와이너리들이 나누어 지고 있는 셈이에요. 어떤 와인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제대로 된 와인을 만들려면 ‘카베르네 쇼비뇽’ 같은 양조용 과일을 재배해야 한다고 하지만, 저는 우리 과일과 우리 농부들의 고생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다른 건 다 잊어도, 한국 와인은 한국 농업에 기반을 두고 살아가면서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것만 기억해 주었으면 해요.”



◆11월 수업은…회식 때 ‘인싸’되는 생활 마술

인생수업 11월 주제는 <회식 때 ‘인싸’되는 생활 마술>입니다. 모임, 회식, 미팅 자리가 부담이신가요? 말없이 가만히 앉아 어색한 미소만 지을 상황을 생각하면 끔찍하다고요? 곧 있을 송년회에서 분위기 띄울 ‘개인기’ 하나 필요하지 않으세요? 김동준 마술사(판타지아매직 대표)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생활 도구들로 마술하는 법을 가르쳐드립니다.


일시 : 11월18일 월요일 오후 7시~8시30분

장소 : 서울 중구 정동길3 경향신문사 5층 여적향(지하철 1·2호선 시청역 도보 15분, 5호선 서대문역 도보 10분)

참가비용 및 인원 : 1인당 2만원(마술키트 포함), 30명 안팎

신청방법 : all.khan.co.kr/apply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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